이 시대에 신앙 생활하는 우리들에게는 ‘바리새인’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만 들립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 당시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외식적인 신앙인이라고 심하게 책망하시는 모습이 많았고,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결국 십자가에 죽이는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기원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멸망하고 유배 된 이후에 택한 하나님의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이 세상과 혼합되고 율법에 벗어난 죄로 인함을 인식하고 세속화와 맞서 성경과 율법을 엄수하려던 사람들로 시작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의 의미는 ‘구별된 자’ 라는 의미로 이방 문화와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고 율법에 따라 정결하게 살아가려는 금욕적인 그들의 태도를 반영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신을 버리고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형식주의 신앙으로 변했기에 예수님께 호된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기독교가 쇠락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업신여김을 당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금욕적인 요소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젊은 크리스천들은 부모 세대들과 달리 술 담배에 대해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성경에 비춰볼 때 술 담배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 믿는 사람들이 술 담배를 끊으면서 믿음이 급성장 하는 것을 봅니다. 삶에 금욕적인 요소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데 꼭 새벽에 교회 가서 기도해야 하느냐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새벽 기도 드리는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새벽 기도 하는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성도의 삶과 더 가까운 것을 봅니다. 침대에 누워 좀 더 자고 싶은 욕구를 극복하고, 정해진 장소를 찾아, 정해진 시간에 기도한다는 금욕적인 요소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십일조가 복음적이지 않다면서, 십일조를 강조하는 목사들을 무식한 사람처럼 취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 싶은 것을 사지 않고, 하나님께 약속한 헌금을 꼬박꼬박 믿음으로 드리는 금욕적인 행위가, 물질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불순종과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앙생활에 금욕적인 요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술 담배를 않거나, 철저히 성수 주일을 하거나, 빠짐없이 새벽 기도를 드리거나, 꼬박꼬박 십일조를 바치거나, 정기적으로 금식 하는 것 등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지식이 아니라 변화된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증거가 된다면, 이런 절제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참된 바리새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