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12:6-9

6 아브람은 그 땅을 지나서, 세겜 땅 곧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때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7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아브람은 거기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8 아브람은 또 거기에서 떠나, 베델의 동쪽에 있는 산간지방으로 옮겨 가서 장막을 쳤다. 서쪽은 베델이고 동쪽은 아이이다. 아브람은 거기에서도 제단을 쌓아서,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9 아브람은 또 길을 떠나, 줄곧 남쪽으로 가서, 네겝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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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속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본토 고향 땅을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삶의 모습을 보면 아브라함의 삶에서 그가 행했던 가장 중요한 행동 두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단, 즉 예배였고 두 번째는 바로 장막이었습니다. 8절을 보면 “아브람은 또 거기에서 떠나, 베델의 동쪽에 있는 산간지방으로 옮겨 가서 장막을 쳤다. 서쪽은 베델이고 동쪽은 아이이다. 아브람은 거기에서도 제단을 쌓아서,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장막을 쳤다. 제단을 쌓아서 예배를 드렸다” 이 두 가지가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했던 일이 있습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영적인 필요와 하나님과의 교통의 자리였고, 장막은 육신적 필요를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막이라는 것은 텐트와 같은 것입니다. 일시적인 주거용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떠날 때에 상당히 부자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옮겨 다닐 때 임시로 쓰는 장막에서 지내기 보다 안정적인 곳에서 넓고 편하고, 든든한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옮겨 다니는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정착하라는 명령이 없이 계속 움직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정착할 땅을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히브리서에서 설명해 줍니다. 히브리서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주실 가나안 땅을 얻기 까지, 더 나아가 약속하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았기에 천막을 치고 사는 삶을 살아도 만족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도 천국을 향하여 가는 이 시대의 아브라함입니다. 우리들의 삶과 믿음도 단순해져야 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중요시해야 할 일은 잠시 살다 떠나야 할 이 땅에서 얼마나 크고 좋은 집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영원한 천국의 집을 믿고 소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우리의 집은 몇 십년 살다가 놓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과 인생을 사도 바울은 장막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육신의 장막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주실 영원한 부활의 몸을 얻기를 소원하며 지금 이 땅에 사는 삶은 주님께서 주신 것들에 지족하시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6-8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이러한 믿음과 만족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아브라함이 예배를 드린 것은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6절을 보면 “아브람은 그 땅을 지나서, 세겜 땅 곧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때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가나안 땅이 밟기만 하면 내 땅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을 가나안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구어 나가야 할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그 땅에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벌써 그 땅을 여러 가나안 족속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땅을 정복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불안하고 마음에 동요가 있었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7절 말씀에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책임져 주겠다”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축복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는 축복은 아닙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에 믿음의 길을 걸으려면 수많은 도전과 스트레스와 방해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어디서 공급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예배의 자리에서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지만 그 예배를 드리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와 힘을 얻고, 잘못된 생각과 길을 깨달아 돌이키며,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는 손길로 인내하고 충성하며 다시 일어나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에 성공합니다. 우리가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생각이 변합니다. 마음이 변합니다. 말씀으로 굳건해 집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빠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던 이유는 항상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단을 쌓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새기기 위해서 승리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단을 쌓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기도와 찬양과 말씀 생활 한 두주만 아니 하루만이라도 빠지면 금방 낙심하게 되고 두려운 마음 걱정하는 마음 의심하는 마음이 우리의 삶을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에 힘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처럼 언제 어디서든지 제단을 쌓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절에 “아브람은 또 거기에서 떠나, 베델의 동쪽에 있는 산간지방으로 옮겨 가서 장막을 쳤다. 서쪽은 베델이고 동쪽은 아이이다. 아브람은 거기에서도 제단을 쌓아서,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라고 기록한 것처럼 어느 곳, 어느 때에도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을 붙잡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그 축복이 내것이 되기 위해서 승리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매일의 삶 가운데 얻으시는 헤이워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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