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21:1-7

1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다. 사라에게 약속하신 것을 주님께서 그대로 이루시니,
2 사라가 임신하였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때가 되니, 사라와 늙은 아브라함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3 아브라함은 사라가 낳아 준 아들에게 이삭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4 이삭이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분부하신 대로, 그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었다.
5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보았을 때에, 그의 나이는 백 살이었다.
6 사라가 혼자서 말하였다. “하나님이 나에게 웃음을 주셨구나. 나와 같은 늙은이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듣는 사람마다 나처럼 웃지 않을 수 없겠지.”
7 그는 말을 계속하였다. “사라가 자식들에게 젖을 물리게 될 것이라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할 엄두를 내었으랴? 그러나 내가 지금,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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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웃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1:6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누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웃겼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사라를 웃기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나의 힘이요, 반석이시오, 피난처라고 고백합니다. 엘리야가 만난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입니까? 갈멜산에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사라가 만난 하나님은 웃음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라의 인생을 보면 그렇게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였기에 사라는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슬픈 여자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혼을 한 후에도 아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기를 갖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시도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기를 갖지 못하자 결국 자기 집에서 종으로 데리고 있는 몸종을 주어서 자식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졌던 여인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찌 사라의 고통뿐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고통이 있습니다. 슬픔이 있습니다. 상처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는 웃을 수 없는 말 못할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그러한 슬픔과 아픔의 옷을 벗기고 웃음의 옷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라의 웃음은 소원을 이룬 성취자의 웃음이었습니다. 자식을 낳은 수 없는 90세라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에 의해 놀라운 하나님께 주신 아들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와 감격의 웃음이었습니다. 사라에게 주신 불가능한 가운데 약속으로 얻는 축복의 웃음이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헤이워드 가족들에게도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힘들어 하는 문제와 마음에 간절히 소원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약속과 뜻 안에서 이루어 주심을 통하여 사라가 웃었던 그 기쁨의 웃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주신 웃음, 또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웃음은 어떠한 웃음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사라의 웃음은 첫째,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으로 얻은 웃음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주신 웃음,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놀라운 웃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통하여 웃을 수 있는 웃음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분명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꼭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23: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고린도후서 1:20절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라고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사라가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믿었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즉 자녀를 주시겠다는 약속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1-2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것을 떠나서 지금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자녀를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가장 필요한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었을 때 믿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만 믿어서 떠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내 사라의 동의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요?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그 약속의 말씀을 같이 믿지 않았다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었을까요? 그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배우자가 믿음으로 서 있지 못해서 힘 있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믿음으로 순종하려고 해도 막아서는 남편, 아내 때문에 눈치 보고, 주저 앉아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기 위해서 남편만 아니라 아내의 믿음도 중요합니다. 아내의 믿음만이 아니라 남편의 믿음도 중요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함께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함께 고향땅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만 믿음의 조상이 아니라 사라 역시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아들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웃을 수 있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가정의 부부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는 신앙,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굳게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을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웃음을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라가 웃은 것처럼 기쁨과 감격과 감사의 웃음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믿음에 거하고 행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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