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16:1-5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하갈이라고 하는 이집트 사람 여종이 있었다.
2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하갈의 몸을 빌려서,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따랐다.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기의 여종 이집트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온 지 십 년이 지난 뒤이다.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임신하였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의 여주인을 깔보았다.
5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당신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나의 종을 당신 품에 안겨 주었더니, 그 종이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멸시합니다. 주님께서 당신과 나 사이를 판단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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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다시피 지금도 중동에서는 많은 싸움이 있습니다. 중동에 있는 국가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분석하는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대결이다. 인종 차별에 대한 싸움이다. 원유를 둘러싼 이익 때문이다” 등등의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부분적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 올라가면 그 문제는 영적인 문제에서 시작된 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지금도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싸움의 시작은 수천년전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3절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납니다. 10년이란 시간 짧지만은 않은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가 없는 후사가 없는 75세 된 아브라함에게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너에게 자손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고향땅을 떠나 먼 가나안 땅에 산지가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자녀가 생기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85세, 아내 사라의 나이가 75세입니다.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사라는 자신을 통해서는 자녀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기다리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갈이라는 몸종을 통하여 아들을 얻는 길을 택합니다. 그로 인하여 가정에, 더 나아가 훗날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문제를 만드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살피고 묵상함 속에 이러한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서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것도 믿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말씀과 소원이 내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이 길어질 때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나름 오래 동안 기도했는데 응답이 늦어질 때, 인간적으로 볼 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어려워 질 때 내 방법으로, 내 힘으로 해결해 보려는 마음이 듭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이 바로 그런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셨고 창세기 15장에서도 다시 한번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10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내 사라도 나이가 점점 더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사래는 인간적인 해결책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제안합니다. 2절입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하갈의 몸을 빌려서,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래가 하는 말을 자세히 보면 사래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사래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아기를 주시고 안주시는 분이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달려 있음을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래의 문제는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여종 하갈의 몸을 빌어서 아이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 당시 문화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옛날 양반과 부자들이 아들을 얻기 위해 행한 씨받이 문화처럼 고대 근동에서는 여종을 통해 후손을 얻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인간적으로 볼 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중요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인간적인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내 사래가 아들을 얻기 위해, 나를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인간적인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을 아브라함에게 합니다. 그러할 때 아브라함이 그 제안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2절 후반절을 보면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이 짧은 문장에 우리가 실수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사래가 제안한 제안이 하나님의 뜻인지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아내 사래의 제안이 하나님의 방법인지, 하나님의 때인지 묻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람의 말을 듣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사실 창세기 3장에서도 아담이 하와가 선악과를 먼저 먹고 아담에게 먹으라고 했을 때 아담도 아내 하와의 말을 듣고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깁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때 문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사람의 말을 듣고 따름으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고, 죄를 짓는 실수를 합니까? 사람의 말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과 인간의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우리 귀에 더 솔깃합니다. 내게 이롭고, 효과적이고, 나은 선택을 하게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깨어짐, 분열, 파괴, 멸망입니다.

그렇기에 참된 믿음, 바른 신앙의 길을 가는 자들은 사람의 말, 세상의 말, 사단의 말, 감정의 말이 아닌 항상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기다리는 삶,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래와 아브라함이 인간적인, 세상이 하는 말을 듣고,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대로 아기를 갖기 위해 여종 하갈과 동침합니다. 그랬더니 원하는 결과를 얻습니다. 하갈이 임신을 한 것입니다. 하갈을 통하여 임신을 하게 된 것을 알고 아브라함과 사래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원하는 것을 이룬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갈이 임신하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4절입니다.“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임신하였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의 여주인을 깔보았다.”문제가 시작됩니다. 여종 하갈이 주인 사래를 무시합니다. 사래는 분노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원망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당신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가정이 갈등 속에 빠집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인간적인 해결책은 반드시 새로운 문제를 만든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택할 때, 즉 믿음이 조급해 질 때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결국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지만 결국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 이삭이 사래를 통하여 낳게 됩니다. 성경 역사 속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이 두 계통은 오랫동안 긴장과 갈등을 만들어 냅니다. 조급한 인간적인 선택이 짧은 문제가 아니라 긴 결과를 남긴 것입니다. 순간의 인간적인 선택이 긴 세월 동안 가정과 관계, 더 나아가 교회까지 어려움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늦는 것 같고, 안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기다림은 믿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이루실 것이고 우리는 믿고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시험은 어쩌면 고난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기다림 가운데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늦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 생각, 내 방법으로 이루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겠습니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를 보는 참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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