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21:5-7
5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보았을 때에, 그의 나이는 백 살이었다.
6 사라가 혼자서 말하였다. “하나님이 나에게 웃음을 주셨구나. 나와 같은 늙은이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듣는 사람마다 나처럼 웃지 않을 수 없겠지.”
7 그는 말을 계속하였다. “사라가 자식들에게 젖을 물리게 될 것이라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할 엄두를 내었으랴? 그러나 내가 지금,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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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하나님의 약속하신대로 아들을 얻었습니다. 나이 90세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약속의 아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어제 함께 나누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웃음을 얻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순종하고 하신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질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하나님이 주시는 웃음을 웃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아들을 얻기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25년만에 이루어졌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것이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1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요셉이 꿈을 꾼 후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기까지 약 15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웃음을 웃기 위해서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장 웃음을 주시지 않고 우리가 훈련받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 후에 진정한 웃음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축복이 지금, 당장, 빨리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우리가 원하는 때와는 다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은 분명히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라가 하나님께서 약속했던 아들 이삭을 얻어서 큰 기쁨을 얻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보면 처음부터 아주 특별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일편단심 민들레와 같이 초심일관 한번도 의심도 없이 굳건히 붙잡았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해 흔들리고 믿음의 위기를 겪었던 많은 상황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그 결과가 가정에 불화가 생겼습니다. 오늘날까지 중동의 전쟁의 근원이 되게 했습니다. 창세기 1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번 사라가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웃었고 18장에는 내년에 낳게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 사라가 웃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은 감사함과 기쁨의 웃음이 아닌 냉소적이고 어이없는 웃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침내 의심과 회의를 넘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처음에는 비웃음이 나왔지만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불신의 웃음이 진짜 웃음으로 변하게 된 것은 의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성경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지만 순간순간 우리에게 드는 의심이 있습니다.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정말로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수고하고 헌신하는 이 일에 보상이 있을까? 예수 믿는다고 나만 손해보고 사는 것 아닌가? 이런 의심이 들지 않습니까? 정말로 내가 죽은 후에 정말로 부활의 몸을 입고 다시 태어날까? 기도를 하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는데 과연 하나님게서 내가 기도하는 기도를 정말 들으시고 응답하실까?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질까?
그러한 의심이 들 때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99세 90세인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내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는 말에 두 사람이 웃었기 때문에 아들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으라고 했습니까? 이삭이라고 지으라고 했습니다. 이삭의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불가능한 가운데 사라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하나님 말씀을 비웃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비웃었어. 그래 내가 정말로 너희를 웃게 만들겠다” 라는 의도에서 웃음이라고 이름을 지으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사라가 90세가 아들을 품에 안고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얼마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마음을 상상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라의 기쁨과 웃음을 상상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들을 얻게 위해서 몸종 하갈을 들여보내고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자 자신을 멸시하는 고통을 받았고 갈등과 불화로 좇아내었던 그러한 열등감과 상처와 고통은 이삭을 낳는 순간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만 기쁨을 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를 아는 모든 사람, 동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웃음을 주었습니다. 창세기 21:6절에 “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100살에 90살에 아들을 낳았데. 하면서 동네 모든 사람이 다 나와서 한번씩 안아보고 만져보면서 “어떻게 그 나이에 아들을 얻었데?” 질문하면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설명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기쁨과 웃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그분을 마음에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한 자에게는 하늘 나라를 약속하시고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 생의 환희와 기쁨과 의미를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이시대 교회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교회 건물로 들어오게 해서 교회건물은 보여주었지만 예수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은 사람들을 교회로 전도하는 이유,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가장 큰 목적과 이유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야 진정한 웃음을 웃을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 알려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삭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이삭을 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한 것이 없구나. 정말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구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시구나” 알게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삭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웃음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태어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믿고 인내하는 자에게 웃음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웃음을 가진 사람이 최상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축복을 체험하고 그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신앙이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웃음을 웃을 수 있는 사람, 그 웃음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주변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웃음과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