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3:12-17
12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저에게 이 백성을 저 땅으로 이끌고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누구를 저와 함께 보내실지는 저에게 일러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저를 이름으로 불러 주실 만큼 저를 잘 아시며, 저에게 큰 은총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3 그러시다면, 제가 주님을 섬기며, 계속하여 주님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부디 저에게 주님의 계획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께서 이 백성을 주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4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 그리하여 네가 안전하게 하겠다.”
15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 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16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이나 저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저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
1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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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시고 홍해를 갈라 마른땅처럼 지나가게 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광야를 지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매일 아침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어 먹게 하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으로 인도하시어 모세를 산 위로 불러 올리시고 나머지 백성들은 산 아래에서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을 인도한 하나님이라고 번제를 드리고 우상 숭배를 합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모두 전멸시키시기고 모세를 통하여 새로운 민족을 일으켜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할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와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기를 위하여 중보하며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그 간절한 기도로 뜻을 바꾸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하시며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함께 올라가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고, 그들이 그 땅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여전히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15절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 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풍요로운 땅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 정착할 집이 있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밭과 과수원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는 풍요함, 평화,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나아가 참된 축복과 풍요, 평화와 행복을 주시는 분인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것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과 축복보다 그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더 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영적 지혜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만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합니까? 건강을 구합니다. 물질의 복을 구합니다. 자녀의 앞날을 구합니다. 직장의 문이 열리기를 구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구하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바가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이러한 나의 원함을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기도 가운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삶 가운데 가장 원하고 구해야 하는 것이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아픈 곳, 병든 곳 없이 건강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삶은 참된 복이 아닙니다. 사업이 잘되고,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세상적으로 부러운 것 없는 재산과 성공을 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그 영혼은 결국 메마르고,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며 따르는 삶이 삶의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산다면 비록 메마른 광야에 거할지라도, 죽음의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어두운 동굴에 거할지라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빌립보서 4:11-13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살면 어떤 처지에서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참된 만족과 기쁨속에서 승리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모세가 알았기에 15절에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 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모세는 16절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저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과 구별하는 표지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 풍성한 삶을 사는 것, 이 시대로 말한다면 단지 교회를 다니고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성경적인 지식이 많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구별됨이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 속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성품을 삶으로 드러내는 삶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구원 받은 백성임을 구별하는 표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 즉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따르는 삶은 산다는 것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결과를 보장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그분의 뜻을 따라가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것이 참된 복임을 아는 사람들의 고백이며 기도인 것입니다.
모세가 그것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지 않으면 그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도 올라가지 않겠다고 기도한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를 보면 놀랍게도 자신만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16절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저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저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라고 기도합니다.
모세는 자신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축복이 함께 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어제도 나누었지만 이스라엘은 모세의 마음을 아프게 한 백성이었습니다. 자신을 원망하고 비난한 백성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닌 금송아지를 만드는 불신앙으로 가득한 고집이 센 백성들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세가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할 이유, 그들이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기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과 재앙을 받는 것을 막는 기도, 그들을 살리는 기도, 더 나아가 그들이 참된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축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의 사람, 믿음의 성숙한 자의 마음이요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는 나의 필요를 넘어 다른 사람의 회복을 구하는 중보의 기도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를 오해한 사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중보기도는 그 사람의 잘못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죄라고 분별하면서도 그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죄가 그들의 마지막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임재가 그 백성 가운데 회복되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마음과 기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놀라운 사랑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십니다. 그래서 17절에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마” 라고 응답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응답이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 속에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