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13:7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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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7절에서 사랑의 또 다른 속성을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라고 알려 줍니다. 덮어 준다는 말의 원어의 의미 안에는 “막아 준다, 보호한다” 라는 의미가 함께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사랑이란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 줌으로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공격, 어려움에서 보호해 주는 모습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누군가의 잘못과 실수, 부족함을 덮어주고 보호해 주기보다 누군가에게 알리기를 좋아합니다. “누가 싸웠다, 망했다, 어떤 죄를 지었다” 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좋아하고 그런 나쁜 소식을 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를 보십시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정치인들 사이에, 더 나아가 교회 안에 성도들 가운데도 허물을 덮어 주기보다도 드러내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모습이 만연해 있습니다. 허물과 부족함을 덮어주지 않고 드러내기 때문에 다툼과 싸움, 나뉨이 일어납니다.

가까워졌기에 믿고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나누었는데 그 나눔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덮어주고 보호해 주기보다 입을 닫지 않고 알리지 말아야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하는 일로 인해서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말들이 퍼진 것으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배신감 경험합니다. 그런 경험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함과 연약함,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없어도 있는 척, 잘못을 했어도 어떻게 하든지 안한 척을 합니다. 깨끗한 척, 강한 척, 몰라도 아는 척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는 것이다” 라고 하신 이유가 이 세상은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기 보다 들추기 때문입니다. 덮어주지 않고 들추기 때문에 하나됨이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교만함과 의로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과 연약함, 잘못을 들추고 비난과 정죄하는 모습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교회 안에, 저와 여러분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워 놓고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라고 예수님을 도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한 의도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명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떠나가고 마침내 예수님과 간음하다 잡힌 그 여자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1절을 보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정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예수님 아니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라고 덮어 주는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은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시는 사랑이십니다. 우리의 수치를 덮어 주시는 사랑이십니다. 그 덮어 주시는 사랑의 모습이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그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내가 하나님이 되어 선과 악을 판단하며 살겠다는 교만함과 불순종의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 선악과를 먹은 후에 자신들이 벗은 것을 깨닫고 수치스러움에 나무 뒤에 숨어 말라 비틀어질 가리지 못할 나뭇잎으로 가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입혀 주심으로 그들의 수치를 덮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럽고 추한 죄로 인해 수치와 수모를 당해야 할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덮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낱낱이 들춰내서 영원한 지옥 불에 던지고자 하는 사단의 정죄함에서 보호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악을 덮어 주시고 보호하신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까? 그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 주신 사랑을 저와 여러분들이 받은 자들이 아닙니까?

우리들의 수치와 허물, 죄악과 더러움을 그리스도의 의로 덧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을 향하여 갈라디아서 3:27절에 “여러분은 모두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가 되었다고 알려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잡히시고 재판을 받으시며 모욕을 받으시던 그 현장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3년 반 동안 예수님의 제자로 사랑을 받으며 따랐던 자로서 할 수 없는 배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러했던 베드로를 먼저 찾아 가셨습니다. 책망하고 비난하기 위해서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무거운 짐과 죄책감을 덜어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래서 찾아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 물으심으로 세 번 부인한 것을 용서하시고 다시 주님의 사명으로 옷 입혀 주시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과 교회를 그렇게 핍박했던 사울을 예수님께 먼저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자신의 그동안의 죄와 잘못을 깨닫고 회개와 용서함을 구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 더 많은 성도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다메섹 성으로 가는 길에 사울을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빛 가운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물으시며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를 돌이켜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세워주십니다. 그 덮어 주시는 사랑을 받았기에 베드로가 놀라운 사도가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 덮어 주시는 사랑을 받았기에 사울이 바울로 변하여 놀라운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만이 아닌 저와 여러분들도 그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도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랑도 덮어주는 사랑입니다. 진정 내가 하나님의 허물을 덮어주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것을 깨달은 사람은 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집니다. 그 받은 사람에 감격하여 받은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으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사랑으로 강해지고, 그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교회, 저와 여러분들에게 명하시는 사랑이 바로 덮어주는 사랑입니다. 잠언 10:12절에는 “미움은 다툼들을 일으키거니와 사랑은 모든 죄를 덮느니라” 라고 알려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4:8절에는 “무엇보다도 서로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덮는 사랑, 우리가 감당해야 할 덮는 사랑은 모든 허물과 죄를 십자가로 가져가 처리하는 사랑입니다. 모든 사실을 알고, 모든 사실을 보고,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 덮어 주는 사랑을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허물을 덮어줌으로 축복을 받은 사건이 나옵니다. 바로 노아와 그의 세 아들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것을 둘째 아들 함이 보고 다른 두 형제에게 가서 말합니다. 이를 전해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즉 그들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그것을 덮어 준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셈과 야벳을 축복하셨습니다. 반면에 함은 저주를 받습니다. 진정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품고 산다면 다른 사람의 허물이 허물로 보이지 않습니다. 설령 허물이 있다 해도 마치 그것이 자신의 허물인 것처럼 민망히 여기고 그 허물을 조심스럽게 덮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가 “하나님,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덮임을 받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 덮는 사랑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축복을 받으며 그 덮는 사랑으로 인해 나의 삶이, 가정이, 관계와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행복의 축복을 함께 누리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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