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9:31

31 그러는 동안에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걸쳐서 평화를 누리면서 튼튼히 서 갔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로 정진해서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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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1절을 보면 참으로 힘이 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걸쳐서 평화를 누리면서 튼튼히 서 갔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로 정진해서,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교회가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걸쳐서 평화를 누리고 튼튼히 서 갔고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저희 교회와 이 지역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실 31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점점 부흥하며 평화를 누렸다고 하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1절에 시작되는 “그러는 동안에” 라는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는 동안이란 어떠한 상황입니까? 교회와 복음이 아무런 방해 없이, 고난 없이 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 믿는 자들을 여전히 핍박하고 잡아들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잡혀서 순교를 당한 상황입니다. 예루살렘에 예수 믿는 성도들을 잡아들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핍박을 피하여 흩어진 성도들까지 잡아들이겠다고 사람들을 보내 잡아들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일에 압장 섰던 사울이 회심하여 놀랍게 그동안 핍박하고 거부하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 구원자라고 다마스쿠스 성에서 전하였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울을 죽이려고 해서 예루살렘 성으로 피해 왔고 예루살렘 성에서도 복음을 전했지만 그가 전한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기보다 더욱 죽이려고 애쓰자 고향 다소로 돌아오게 된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이 바로 31절에 “그러는 동안에”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러는 동안에” 라는 말 뒤에는 “교회는 쇠퇴해졌다. 점점 힘을 잃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다” 라는 말이 나와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동안에, 그러한 상황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갈릴리까지 퍼져 나간 교회가 평화를 누렸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 평강은 세상의 평화와 평강과 다릅니다. 세상이 말하는 평화는 아무런 문제, 어려움, 고난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 다른 평화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평안과 평화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근심과 두려움이 있는 상태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과 평화라는 것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있고, 핍박과 박해가 있는 상황 속에서도 누리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와 흩어져 서 모인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교회들은 여전히 예수 믿는 자들에 대해 핍박이 있고 박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누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서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받는 고난과 핍박은 사실 우리가 지금 받는 고난과 어려움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들이 아니었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특별히 교회 안에서 시험에 들었다. 마음에 상처 받았다라고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교회 나오겠다 나오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것들을 보면 사실 “내 자존심 건드렸다. 나를 무시했다. 내 빈정을 상하게 했다. 기분 나쁘게 했다” 이런 정도가 아닙니까? 살펴보면 정말 창피한 일인데도 그런 말과 행동을 누가 나에게 했다고 마음이 흔들리고, 시험에 들고, 좌절하고, 미워하고 쓰러지는 것을 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목숨의 위협을 받는 핍박과 환난, 고난 가운데서도 마음의 평안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담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함” 이었습니다. 분명 성도들은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신앙을 핍박하고 위협하는 박해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자신들을 감옥에 가두고, 매를 들고, 죽이는 일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드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0: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그들은 자신의 몸을 죽이는 박해를 두려워하는 신앙이 아니라 몸과 영혼, 죽음과 지옥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의 영혼을 책임져 주시고, 마지막 날에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산다면 이 땅에서의 짧은 인생과 세상의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죄인들의 성공과 부함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 그들이 서게 될 것이고 멸망당할 것을 알기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비참하게 여기기에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참된 평화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신앙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믿음 안에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 신앙, 그 믿음이 있었기에 수많은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참된 평화를 누리고 튼튼히 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신앙, 이 믿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과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신앙과 믿음으로 살아갈 때 성령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를 격려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그러한 신앙과 믿음으로 튼튼히 서서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부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교회가 시작된 후에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 그 예수를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중에서 평화를 누리고, 튼튼히 섰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성령의 위로하심으로 인해 교회가 부흥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러한 교회, 그러한 신앙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과 우리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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