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인성의 과부는 일찍 남편이 죽었습니다. 남은 외아들이 희망이요 삶의 이유였을텐데 그 아들마저 죽었습니다. 이러한 비극과 슬픔을 이 여인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의 주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진정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사람은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과부의 슬픔과 고통을 어느 누구도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고 “울지 말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신 것은 사람들이 가엾게 여긴것 과는 다른,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예수님 의 “울지 말라”  라는 말씀은 말로 끝나는 위로의 말이 아닌 그 과부의 슬픔과 고통과, 눈물을 중단시킬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죽은 아들의 관에 손을 대시고 “일어나라” 라고 명령하셨고 그 말씀대로 과부의 아들이 살아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것은 생명의 주관이시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도 가버나움 동네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그 집에 가서 죽은 소녀를 향해 “소녀야 일어나라” 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도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가 죽어 돌 무덤에 장사한지 삼일이 지났는데 그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셨습니다. 그러할 때 죽었던 소녀가 일어났고, 나사로가 살아서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며, 치료자이시며, 위로자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이 세상에 진정 나를 이해해 주고, 나의 아픈 마음, 답답한 마음, 힘든 마음을 알아주고, 참으로 위로해 주며, 마음을 기쁨과 평강으로, 참된 안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창조자가 되시고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수많은 문제와 난관, 상처와 슬픔을 만날 때 어쩔 줄 몰라 죄성을 따라 원망, 탓, 비난, 좌절, 고통, 낙심, 좌절 속에 살아갑니다. 채워주지 못하는 세상의 것과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이 참된 평강과 위로자 되심을 믿고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와 힘과 능력으로 이 땅위의 험한 길을 기쁨과 감사, 평강과 담대함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