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5:1-5
1 아담의 역사는 이러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다.
3 아담은 백서른 살에 자기의 형상 곧 자기의 모습을 닮은 아이를 낳고,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4 아담은 셋을 낳은 뒤에,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5 아담은 모두 구백삼십 년을 살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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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인간을 사람이라고 칭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단지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대리자로, 청지기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그러한 참된 사람의 본 모습으로 회복하신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관계에서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서 벗어난 지은 죄로 부터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보시면서 로마서 3:10-12절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의인은 한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고 선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의 겉모습은 지니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참된 인간성,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영적인 생명을 얻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시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신 것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의를 위해 살게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삶을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지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3:15절에“내가 너희에게 행케 하려 하여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였다”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래서 가장 즐겨 사용하셨던 자신을 칭했던 말이 ‘인자 Son of man’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받은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따라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내려 놓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구원을 이루는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치료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참된 예배자, 참된 사람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의 본질인 것입니다. 나도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살겠다. 예수님처럼 닮겠다 라는 마음으로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 하셨을 때 무엇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까?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2:7절에 보면 사람을 무엇으로 지으셨습니까?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벌써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도 있었고 금도 있었고 강한 강철도 있었고 보석도 있었습니다. 귀중한 것으로 보면 다이아몬드가 가장 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금이 변하지 않습니다. 단단하기로 보면 강철이 단단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재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잘 것 없는 흙으로 만드셨습니까?
흙 자체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흙으로 벽돌도 만들고 질그릇도 만들지만 쉽게 깨집니다. 즉 흙은 연약합니다. 빚어서 어떤 형태로 만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고 부서져서 다시 흙으로 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항상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흙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한 흙을 재료로 사람을 만드셨지만 하나님의 생기를 부어 넣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땅에 속해 있지만 하나님의 생기를 담은 존재입니다. 본질적으로 연약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 받고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우리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라고 창세기 3:19절에 명하시고 정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모래시계와 같습니다. 윗부분의 모래가 매일 줄어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산다는 것은 매일 매일 그만큼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산다는 것은 내가 언젠가는 죽는 다는 것을 알고 나의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내게 죽음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그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참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참된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 앞에서 이 땅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심판이 있음을 알고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뜻하신 삶을 늘 분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 땅에 70년 80년 산후에 죽음으로 끝나는 삶이 아니라 죽음 뒤에 있는 이 땅에서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내가 죽는 존재임을 모르고, 죽음 후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면 그 인생은 허무한 인생, 마지막 날 죄의 심판을 받는 멸망 받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후에 영원한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허비하는 삶이 아니라 날마다 영원으로 채워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언제부터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까? 창세기 4:26절을 보면 인간이 처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가 바로 에노스 때부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사람들이 비로서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왜 사람들이 그때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까? 에노스라는 이름은 보통 명사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라는 뜻이 됩니다.
에노스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이 죽는 존재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녀들을 낳고 그 자녀들이 또 다른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이 또 다른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900년 이상을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당시 죽는 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죽음을 보고, 하와의 죽음을 보면서 ‘아 우리는 죽는 존재이구나’를 깨닫은 후에, 에노스때부터 자신이 죽는 존재라는 것을 보고 알았을 때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언젠가는 죽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 그 죽음 후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깨달을 때,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 때 믿음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유한한 존재이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인격적인 하나님을 부르게 되어서 이 땅에서의 죽음을 준비하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랑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나를 사랑하여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삶, 예배하는 삶을 살고, 내가 받은 그 사랑과 은혜, 용서를 깨달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십자가에서 나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보여주신 사랑을 깨닫고 나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힘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참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