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1-13

1 라헬은 자기와 야곱 사이에 아이가 없으므로, 언니를 시새우며, 야곱에게 말하였다. “나도 아이 좀 낳게 해주셔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어요.”

2 야곱이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단 말이오? 당신이 임신할 수 없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3 라헬이 말하였다. “나에게 몸종 빌하가 있어요. 빌하와 동침하셔요. 그가 아이를 낳아서 나에게 안겨 주면, 빌하의 몸을 빌려서 나도 당신의 집안을 이어나가겠어요.”

4 라헬이 자기의 몸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서 아내로 삼게 하니, 야곱이 빌하와 동침하였다.

5 마침내 빌하가 임신을 하여, 야곱과 빌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6 라헬은 “하나님이 나의 호소를 들으시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려고,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단이라고 하였다.

7 라헬의 몸종인 빌하가 또 임신을 하여 야곱과의 사이에서 두 번째로 아들을 낳았다.

8 라헬은 “내가 언니와 크게 겨루어서, 마침내 이겼다”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납달리라고 하였다.

9 레아는, 자기가 다시는 더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자기의 몸종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서, 아내로 삼게 하였다.

10 레아의 몸종 실바와 야곱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11 레아는 “내가 복을 받았구나”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갓이라고 하였다.

12 레아의 몸종 실바와 야곱 사이에서 두 번째로 아들이 태어났다.

13 레아는 “행복하구나, 여인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말하리라”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아셀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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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보면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는, 또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아버지를 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조상으로 택함 받기에는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고 놀라운 축복의 약속을 하시며 부르셨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고향땅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믿음을 기뻐하시고 비록 계속되는 연약함과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주셨고 이삭이 야곱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야곱이 12명의 아들을 갖게 되면서 그 12명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는 12명의 아들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가를 보여 주는 사건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12지파의 조상이 되었던 야곱의 아들들이 태어나는 과정과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 이러한 가정,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12지파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서 부끄럽고 허물 많은 야곱의 아들들을 택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 나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창세기 30장을 보면 한마디로 보면 야곱의 가정이 콩가루 집안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먼저 야곱의 아내들을 보십시오. 첫째 아내인 레아는 하나님보다 남편의 사랑에 목을 거는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픔을 보시고 아들 넷을 주셨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아들을 낳는 일에 목을 매는 여인이었습니다.

둘째 아내 라헬은 어떻습니까? 배려할 줄 모르는 여인이었습니다. 또한 시기하고 질투가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언니 레아가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배려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언니가 아들을 낳자 시기하고 질투하여 남편에게 “나에게도 아들을 낳게 하라”고 바가지를 긁는 질투심으로 가득한 이기적인 여인이었습니다.

라헬은 자신에게 아기가 생기지 않자 자기 몸종 빌하를 야곱의 첩으로 주어 아들을 얻습니다. 단과 납달리입니다. 라헬이 몸 종 빌하를 통하여 두 아들을 얻자 레아도 자신의 출산이 멈추자 몸종 실바를 남편 야곱에게 주어 갓과 아셀이라는 두 아들을 낳습니다. 이런 가정, 이런 여인들, 그들에게서 낳은 아들들이 하나님의 택한,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로 쓰시려고 택한 지파의 대표요, 조상이요, 믿음의 어머니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볼품없고 창피하고 부끄러운 모습들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그들이 낳은 아들들이 신앙과 인격이 훌륭했습니까? 전혀 아니었습니다. 첫째 아들 르우벤은 어떠한 아들입니까? 나중에 나중에 서모인 빌하와 간통을 합니다. 아버지의 아내, 서모와 간통을 한 아들.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그 사건으로 인해 결국 장자권을 잃고 장자의 축복을 요셉이 받습니다. 그러나 르우벤이 12 지파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를 지었지만 그를 이스라엘의 지파로 세우시고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시므온이고 셋째 아들은 레위는 어떻습니까? 창세기 49장에 보면 아버지 야곱이 죽기 전에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아버지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향해 잔해하는 기계, 즉 살인하는 기계라고 표현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창세기 34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고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디나였습니다. 그런데 여동생 디나가 세겜 성에 구경을 하러 갔다가 하몰이라는 이방인 남자, 그러나 그 지역 부족의 족장 아들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그리고 디나를 아내로, 며느리로 주면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찾아 왔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자신들과 같이 전체 부족의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디나의 결혼을 허락하고, 그들과 한 민족이 되어 살겠다고 속입니다. 부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속에 있을 때 칼을 들고 들어가 성 안의 모든 남자들을 다 죽이고 약탈합니다. 엄청난 죄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러한 살인을 저지른 시므온과 레위를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시고 12지파로 세우십니다. 더욱이 레위 지파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를 드리는 특별한 지파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격 때문이 아니라 자격이 되지 않는데도 베푸시는 사랑이 바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넷째 아들 유다는 어떻습니까? 레아가 유다를 낳은 후에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라고 했던 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듯이 나중에 유다가 며느리 다말과 관계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12 지파 중에 메시야가 태어나게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조상의 족보에 오른 다섯명의 여인들을 보면 네명은 각각 기생, 이방인, 시아버지와 관계를 가진 여자, 그리고 간음한 여인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신분이, 부정한 모습들이 하나님의 복을 가로 막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실수한 부분, 허물까지도 받아 주시고 결국 하나님의 역사와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레아에게 네명의 아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아들들은 어떻습니까? 다섯째 , 여섯째 아들의 이름이 단과 납달리입니다. 단과 납달리는 라헬의 몸종이었던 빌하가 낳은 아들들입니다. 어떻게 단과 납달리가 태어납니까? 30:1절을 보면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라고 시기와 질투 때문에 몸종 빌하를 통하여 낳았습니다.

언니 레아가 4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비록 남편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을지라도 아들을 낳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할 때 라헬의 마음에 어떠한 마음이 있었습니까? “그래 언니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까 아들이라도 낳아서 위로가 되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이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언니 레아를 시기했습니다.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하는 말이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화가 나도 상식에 벗어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라헬의 태도에 야곱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2절에 “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맞는 말이지요. 무슨 말입니까? “나에게 바가지 긁을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된다. 마음을 바꿔야 한다”이 말 아닙니까? 라헬은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습니다. 마음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 나도 긍휼히 여기셔서 자식을 얻게 하소서” 라고 나아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3-5절을 보십시오. “라헬이 가로되 나의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그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빌하가 잉태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라헬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하나님의 방법을 깨닫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인간적인 방법을 생각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라헬은 어떻게 하든 아들만 낳으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없고 인간적인 방법, 세상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자기 몸종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주어서라도 아들을 낳아 언니 레아를 이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질투심 때문에 자기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서 한 여자를 씨받이로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쁜 사람은 야곱입니다. 라헬이 이러한 제한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No 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자식을 달라고 할 때는 화를 내고 내가 하나님이냐 라고 화를 냈던 야곱이 이 제안에는 아무런 대꾸없이 허락합니다.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시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뜻을 알기를 구하고 기다려서 하나님의 의를 이룹시다” 이래야 정상 아닙니까?

그런데 야곱은 라헬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왜 그랬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여자를 이기는 남자가 없습니다. 아담이 하와가 선악과를 주었을 때 넘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가 하갈을 주었을 때 넘어갔습니다. 바가지를 긁는 아내를 이길 남편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분명하게 No 할 줄 아는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빌하를 통하여 아들을 얻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적인 생각, 인간적인 방법으로 나온 결과였습니다. 그런데도 라헬은 6절에 “라헬이 가로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하나님의 뜻과 방법으로가 아닌 인간의 방법과 감정과 분노로 몸종 빌하를 씨받이로 주었으면서도 라헬은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셔서 아들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분명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지만 다섯째 아들 단은 인간의 시기와 질투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단이 태어났지만 라헬의 시기와 욕심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언니는 넷을 낳았는데 하나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라헬은 아이를 더 낳도록 빌하를 부추깁니다. 7-8절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잉태하여 둘째 아들을 아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가로되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언니와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 이해의 관계, 서로 돕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라헬은 언니를 경쟁자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경쟁심으로 낳은 아들이 납달리입니다.

그러자 레아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자신도 몸종 실바를 남편의 아내로 삼게 해서 아들을 낳게 합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들이 갓과 아셀입니다. 나중에 환합채를 사고 팔고 하면서 레아가 두 아들을 더 낳습니다. 잇사갈과 스불론입니다. 30:13절을 보면 “사람들이 나를 행복한 여자라고 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행복한 여자입니까?

이렇게 시기와 경쟁심으로 낳은 아들들이 바로 야곱의 아들들입니다. 그러한 아들들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는 축복을 줍니다. 특별히 창세기 49:21절에 보면 납달리에 대해 이러한 축복을 합니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신명기 33:23 “납달리에 대하여 일렀으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

야곱의 아들들을 택하여 12지파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다시한번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무조건적인 은혜’ 라는 것입니다. 르우벤의 모습을 보면 복을 누릴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다, 단, 납달리 모두 경쟁을 위해, 언니를 동생을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서 낳은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들을 받아 이스라엘의 12 지파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격이 있기 때문에, 의롭기 때문에, 정말로 믿음이 좋기 때문에 주시는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복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더 하십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택함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버리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각자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으로 얼마나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가 많습니까? “자격이 되네 안되네, 끌어 내려야 한다. 가만 두면 안된다” 우리 스스로에게 낙담되고 좌절될 때가 많습니까? “내가 이 직분을 가지고 이 일을 계속 맡아도 되는가? 내가 그래도 신앙생활 몇 년 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밖에 못하나?” 라고 하는 낙망이 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과연 내가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교회에 도움이 될까? 라는 마음이 들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를 받아 주시고, 우리의 죄를 끝없이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허물을 이해해 주시고 우리를 복의 자녀로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 사랑, 은혜를 깊이 깨달아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무엇 더 드려 섬기겠습니까?” 라는 마음으로 섬기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으로 다른 영혼들을 살리고, 세우고, 위로하고, 이끌어 주며 축복하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나를 늘 사랑하시고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힘을 얻으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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