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21:12-19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4 성전 뜰에서 눈 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15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여러 가지 놀라운 일과, 또 성전 뜰에서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16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이들이 무어라 하는지 듣고 있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17 예수께서 그들을 남겨 두고,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가셔서, 거기에서 밤을 지내셨다.
18 새벽에 성 안으로 들어오시는데,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9 마침 길 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그 나무로 가셨으나,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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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으로 나귀를 타고 들어오셨을 때 예수님을 알아본 예루살렘에 백성들과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모인 수많은 인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자신들의 겉옷을 땅에 깔아 드리며 예수님을 개선장군처럼 맞아 들였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들과 말씀들을 직접 보았거나 들었기에 로마의 식민지로 고생하는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고 오병이어의 기적과 치료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인간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세상적인 구원자 메시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죄의 권세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신 구세주이심과 주님이심을 믿고 주님의 뜻대로 섬기기 위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오신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회복됨, 교제함이 있어야 할 성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 소리와 기도소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다투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로 드릴 양과 소, 비둘기를 사야하고, 그리고 성전세를 내야 할 때 이스라엘 화폐로 내야 하기에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외국돈을 환전해야 하는데 이익과 탐욕으로 높은 가격을 매겼기에 서로 다투고 싸우는 소리가 가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이러한 행해서는 안될 모습과 소리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13절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예수를 믿어 성령의 전이 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어떤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까? 마음에 어떤 소리와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상을 엎으시고 분노하셨던 것처럼 있어서는 안 될 다툼과 싸움과 원망이 소리가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내 욕심과 이익을 위해서 해서는 안 될 죄 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교회가,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찬양하는 소리가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예배, 찬양의 예배, 감사의 예배, 사랑과 섬김으로 가득한 교회와 성령의 전인 마음이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그 나무는 곧 말랐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선민이라 불렀지만 정작 삶에는 영적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행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무런 열매가 없는 의식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혹시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시 상을 엎으셔야 하는 모습은 아닌가요? 이사야서 5:4-5 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나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무슨 일을 하려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울타리를 걷어치워서, 그 밭을 못 쓰게 만들고, 담을 허물어서 아무나 그 밭을 짓밟게 하겠다”

이 당시 이스라엘에는 종교행위는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에 열매가 없다고 한탄하십니다. 예배시간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입술로 기도하는 것보다도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위의 말씀과 같이 인격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약한 자를 돌아보고 섬기는 선한 행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과 행위를 통해서 예수님이 전파되고 드러나는 생명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을 알고자 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몸부림칠 때 우리 삶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들이 맺힐 것입니다.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순종함으로 받으셨습니다. 모욕과 멸시, 고난과 고통을 받고 견디심으로 구원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인내함이 필요합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순종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혹시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삶이 가 형식적인 종교행위에 그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삶에서 어떤 열매들이 맺히고 있는지 돌아보고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고 그 순종함을 본받기를 원하는 기도와 삶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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