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7:14-21
1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로는 고집이 세서, 백성들을 내보내기를 거절하였다.
15 그러니 너는 아침에 바로에게로 가거라. 그가 물가로 갈 것이니, 강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만나거라. 너는 뱀으로 변했던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서,
16 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나를 임금님께 보내어 이르시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어 그들이 광야에서 나에게 예배하게 하라, 하셨는데도, 임금님은 아직까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17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주님께서 친히 주님임을 임금님께 기어이 알리고야 말겠다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쥐고 있는 이 지팡이로 강물을 치면, 이 강물이 피로 변할 것입니다.
18 강에 있는 물고기는 죽고, 강물에서는 냄새가 나서, 이집트 사람이 그 강물을 마시지 못할 것입니다.'”
1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아론에게 이르기를, 지팡이를 잡고 이집트의 모든 물 곧 강과 운하와 늪과 그 밖에 물이 고인 모든 곳에 손을 내밀라고 하여라. 그러면 그 모든 물이 피가 될 것이며, 이집트 땅 모든 곳에 피가 괼 것이다. 나무 그릇이나 돌 그릇에까지도 피가 괼 것이다.”
20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다. 그가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지팡이를 들어 강물을 치니, 강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하였다.
21 그러자 강에 있는 물고기가 죽고, 강물에서 악취가 나서, 이집트 사람들이 그 강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이집트 땅의 모든 곳에 피가 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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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기 시작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내린 첫 번째 재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첫 번째 재앙은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입니다.
20-21절을 보면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자 나일강의 물이 피로 변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다. 그가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지팡이를 들어 강물을 치니, 강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하였다. 그러자 강에 있는 물고기가 죽고, 강물에서 악취가 나서, 이집트 사람들이 그 강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이집트 땅의 모든 곳에 피가 괴었다”
하나님께서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신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이집트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영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나일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었습니다. 나일강은 이집트 나라의 생명줄이었습니다. 나일강의 주기적인 홍수는 땅에 영양분을 공급해 농경지를 매우 비옥하게 만들었습니다. 홍수를 통해 나일강 주변을 옥토가 되게 하여 농사를 짓기에 최적의 농토가 되게 하였습니다. 나일강을 통한 원활한 이동과 물자 교환, 더 나아가 뱃길을 통하여 무역과 교역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나일 강은 이집트를 전 국토를 관통하기에 마실 물과 농토에 물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나일 강은 생명과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 나일 강을 하나님께서 피로 바꾸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집트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을 흔드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풍요함을 주는 나일 강,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나일강을 건드신 것입니다. 나일 강이 그들이 믿고 의지할 것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일 강을 피로 변하게 하시어 강에 있는 물고기가 죽고, 강물에 악취가 나서 강물을 마실 수 없게 된 재앙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로 하여금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원천이 무엇이라고 믿고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돈을 의지하고 있을 수 있고, 내 직장, 내 가게, 내 건강 혹은 내 능력과 나의 경력을 자랑하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돈도, 직장도, 건강도, 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때 발생합니다.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게 될 때 그것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나일강은 하나님께서 주신 물이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습니다. 그것을 사실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나일 강을 치심으로 그들에게 질문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정말 의지해야 할 대상이 누구냐? 진정 너희에게 생명을 주고 살아갈 원천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진정 그것이 너희가 믿고 의지하고 살아갈 참된 원천이냐?” 우리도 이 질문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는가?”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가?”
이집트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연과 생명과 풍요와 관련된 것들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재앙들을 보면 이집트가 의지하고 섬겼던 우상들을 하나씩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나일강을 치신 것입니다. 이집트의 신들이 생명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재앙인 것입니다.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여 나일 강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물을 주신 분도, 농사를 가능케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길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섬겨야 함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나일강의 물이 피로 변하자 이집트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마실 물이 없어진 것입니다. 여전히 나일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지팡이로 치자 강물이 피로 변했습니다. 그러자 의지하던 나일 강은 여전히 있지만 정작 그 물을 마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것이 있어도 하나님이 없으면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없습니다. 돈이 있어도 평안이 없을 수 있습니다. 성공했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좋은 집이 있어도 마음의 안식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아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공허합니다. 참된 행복과 만족,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돈으로, 성공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또는 술과 향락, 취미와 오락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놓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지하던 것을 흔드십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것이 나를 지켜 주지 못하고, 나를 살릴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흔들릴 때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경제적인 상황이 어려워질 때 하나님께 나아오고, 내가 계획했던 길이 막힐 때 하나님의 길을 찾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흔들림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바로 세우십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한 것은 바로 왕과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의지하는 나일강도 내가 다스린다.”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의지하는 것이 무엇이냐?”“그것이 정말 너를 지켜줄 수 있느냐?”“네가 의지해야 할 대상은 오직 나다.”
출애굽기 전체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여러 재앙을 내리시는 목적이 단순히 이집트를 괴롭히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로 왕, 그리고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출애굽기 7:5절에서도 “내가 손을 들어 이집트를 치고, 그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 낼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재앙은 단순한 멸망과 파괴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계획과 뜻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것을 의지하고 믿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 종종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게 하시기 위해서 어려움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이집트에 내린 재앙처럼 곤란함, 깊은 구덩이에 넣으시기도 합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라고 원망과 분노함, 좌절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깨닫고 만난다면 그것은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참된 믿음으로 바로 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나일강이 피가 되었다는 기적 자체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하여 “너희가 의지하는 모든 것보다 내가 크다. 내가 너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이요, 삶의 원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말씀을 통해 나에게 있어서 나일강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게 없으면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없으면 내 삶이 무너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일 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건강, 자녀, 직장, 명예, 인정, 내 뜻, 나 자신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이 모두 소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지는 순간 그것은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의지하고 붙들고 있으면 결국 나일강은 피로 변할 것입니다. 나일강은 변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변합니다. 돈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상황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우리의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되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새기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 제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붙들고 있던 제 손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붙들게 해 주십시오. 주님이 나의 생명입니다. 주님이 나의 공급자입니다. 주님이 나의 보호자입니다. 주님이 나의 소망입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겠습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