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3:31-33

31 내가 너희 땅 경계를 홍해에서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로 정하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너희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너희가 그들을 쫓아내어라.
32 너희는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아라. 그들의 신들과도 언약을 맺지 말아라.
33 너희는 그들을 너희 땅에서 살지 못하게 하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너희를 유혹하여 나에게 죄를 짓게 할까 염려가 된다. 너희가 그들의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희를 잡는 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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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이 아닌 가나안 민족들이 살고 있는 땅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쫓아내라, 그들과 또한 그들의 신들과 언약을 맺지 말아라, 그들을 그 땅에서 살지 못하게 하라” 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러한 단호한 명령을 하셨습니까? 그리고 이 명령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함께 묵상하며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고 살지 못하게 하라고 명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31절부터 33절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고,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신들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을 너희에게 허락한 가나안 땅에서 살지 못하게 하신 이유를 33절 후반절에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너희를 유혹하여 나에게 죄를 짓게 할까 염려가 된다. 너희가 그들의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희를 잡는 덫이 될 것이다”

가나안 민족들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면 점점 그들이 섬기는 우상숭배와 그들이 행하는 악한 죄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무너지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큰 위험은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동화되는 것이었습니다. 적이 위험한 것은 밖에 있을 때보다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끝까지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을 종으로 삼아 노동을 시켰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그것이 훨씬 이익인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나안 민족을 정복했기에 그들을 조금 담겨 두었다고 그들에게 넘어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강하기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되지 않은 가나안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고 사는 것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흘러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민족을 따라 갑니다. 그들이 섬기던 우상 숭배에 빠지고, 그들이 행하던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음행을 범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버리게 되고 정복했던 가나안 민족에게 도리어 정복 당하여 고통과 억압을 받는 식민지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하라고, 하지 말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하게 순종하지 않고 타협하려는 유혹이 있습니다. 세상이, 사단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 그 정도는 괜챦아”하지만 신앙이 무너지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은 갑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타협, 작은 불순종을 통해서 조금씩 무너지는 것입니다.

처음 죄와 타협하려고 할 때는 양심에 갈등도 생깁니다. “이렇게 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라는 고민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그렇게 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다음번에 타협하고 죄를 짓는 것이 쉬워집니다. 그 다음에는 겁도 없어지고 죄의식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에게 확실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반복해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들을 쫓아내라, 그들과 또한 그들의 신들과 언약을 맺지 말아라, 그들을 그 땅에서 살지 못하게 하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상종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과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의 가치관에 속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치관을 받아 들이고 따라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15-16절에도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세상 속에 사는 것과 세상에 속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 살지만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33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들을 너희 땅에서 살지 못하게 하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너희를 유혹하여 나에게 죄를 짓게 할까 염려가 된다. 너희가 그들의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희를 잡는 덫이 될 것이다” 덫이 무엇입니까? 동물을 잡기 위해 숨겨 놓은 도구입니다. 덫, 올무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순간 걸려 버립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도 덫과 같습니다. 올무와 같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낚시를 할 때 미끼와 같습니다. 처음부터 죄가 이것은 너를 잡기 위해서, 망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해보고 싶고, 하면 내게 이익이 분명 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고, 영적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육신의 눈에 보이는대로, 내 마음대로, 육체의 욕심이 원하는대로 하라고 사단과 세상의 유혹은 유혹적입니다. 정직이 아닌 속임수를 쓸 때 순간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감정대로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습니다. 내가 이긴 것 같습니다.

그러한 내 감정, 내 원함, 육체의 욕심이 우상의 유혹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단순히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31절과 33절을 보면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싸워야 하고, 쫓아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을 미워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죄와의 싸움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육신의 정욕과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우상과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은 큰 싸움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게 보이는 죄와의 싸움입니다. 우리 생각에 “이 정도는 괜챦지 않나?” 라고 생각이 드는 그 작은 죄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 작아 보이는 죄를 허용하고 타협하기 시작하면 그 죄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의 습관이 되고, 우리의 성품이 되고, 결국 우리의 삶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작은 죄도 내 안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죄의 어떠한 모습이라도 쫓아낼 수 있는 결단과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가운데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으며, 죄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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