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5:10-11
10 “아카시아 나무로, 길이가 두 자 반, 너비가 한 자 반, 높이가 한 자 반 나가는 궤를 만들어라.
11 순금으로 그 안팎을 입히고, 그 둘레에는 금테를 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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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들라고 하시면서 그 안에 넣을 언약궤를 만들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입니다. 언약궤는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성막 안에 가장 거룩한 곳, 즉 지성소 안에 놓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언약궤는 사실 나무로 만든 상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상자 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율법을 대표하는 두 개의 돌로 새긴 십계명이 들어가고,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를 보관하는 상자였습니다. 언약궤는 단순한 상자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상자였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언약궤를 아무렇게나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 크기는 얼마로 할 것인지, 어떻게 금으로 입힐 것인지, 언약궤를 들을 때 필요한 고리는 어디에 달 것인지, 언약궤 위의 그룹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과 성막 안에 들어가는 모든 기구를 만들라고 하시면서 출애굽기 25장부터 40장까지 우리가 성경을 읽기에 지루할 정도로 구체적인 규격과 재료, 방법대로 만들라고 하신 의미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0-11절의 말씀입니다. “아카시아 나무로, 길이가 두 자 반, 너비가 한 자 반, 높이가 한 자 반 나가는 궤를 만들어라. 순금으로 그 안팎을 입히고, 그 둘레에는 금테를 둘러라”모세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언약궤를 만들었습니다. 성막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창세기에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이 겹칩니다.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신다고 하시며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 준비하라고 명령하셨을 때도 그 방주를 어느 사이즈로, 어떤 나무로, 어떤 모습으로 만들라고 자세히 명령하셨고 놀랍게도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명하신대로 방주를 그의 가족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은 내 생각, 내 방법을 주장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어떤 사안을 논의할 때도 내 의견, 내 판단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설득하고 또는 강하게 어필하여서 내 방법과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앞에서도 보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듣고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더 좋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편하다. 아직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자세히 보면 여전히 신앙의 기준이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의 삶은 그 기준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 하셨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고 언약궤를 만들 때 이스라엘 백성의 의견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너희가 원하는 대로 만들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한 수치와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 모든 결정,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교회의 일군과 제직들은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열심보다 먼저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고, 열심히 섬긴다고 하는데 내 뜻과 내 원함대로 섬기고 열심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열심 이전에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방법과 때를 바로 알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일, 내가 하는 열심히 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법인가, 내가 원하는 방법인가를 묻고 분별해야 합니다.
11절을 보면 “순금으로 그 안팎을 입히고, 그 둘레에는 금테를 둘러라” 라고 명하십니다. 언약궤 자체는 조각목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것을 귀한 금으로 입혔습니다. 조각목이란 성경에서 ‘싯딤나무’ 라고 불리며 오늘날의 아카시아 나무의 종류입니다. 하지만 이 싯딤나무는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이나 돌 틈에서 자상하기에 자라는 속도가 매우 느리고 작고 뒤틀리고 볼품이 없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무를 재료로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를 만드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세상에서 화려하고 귀한 것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약한 것, 부족한 것을 택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복음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사람들을 보십시오.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 요셉, 예수님의 제자들, 바울, 디모데 …
중요한 것은 재료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맡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조각목은 그 자체로 언약궤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규격에 따라 잘라지고 다듬어집니다. 그리고 그 위에 놀랍게도 금으로 입혀집니다. 그렇게 만들어져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위치, 성막에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 놓여짐으로 예배의 놀라운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여전히 적용되는 하나님의 은혜요 택하심이요 쓰임 받는 영적인 원리입니다. 우리 역시 조각목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가진 것 많지 않습니다. 능력도 부족합니다. 나이도 많습니다. 모난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들이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쓰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우리가 얼마나 대단하고 능력 있는 사람인가가 아닌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고 순종하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함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과 동시에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을 섬기는 종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그 사실을 바로 깨닫고 알기만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 생각, 내 원함,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명령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순종하며 쓰임 받는 주님의 도구요 충성된 종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