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8:21-32

21 네가 나의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나는, 너와 너의 신하들과 백성들과 너의 궁궐에 파리를 보내서, 이집트 사람의 집집마다 파리가 들끓게 하고, 땅도 파리가 뒤덮게 하겠다.
22 그러나 그 날에 나는, 나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을 보내지 않아서,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겠다.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나 주가 이 땅에 있음을 네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23 내가 나의 백성과 너의 백성을 구별할 것이니, 이런 이적이 내일 일어날 것이다’ 하여라.”
24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시니, 파리가 무수히 바로의 궁궐과 그 신하의 집과 이집트 온 땅에 날아 들었고, 그 땅이 파리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
25 그러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이제 너희는 가되, 이 땅 안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
26 모세가 말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을 부정하게 여기므로 이 땅 안에서는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것을 희생제물로 바치면, 그들이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우리를 돌로 치지 않겠습니까?
27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광야로 사흘길을 나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28 바로가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너희를 내보내서, 너희가 광야에서 주 너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겠다. 그러나 너희는 너무 멀리는 나가지 말아라. 그리고 너희는 내가 하는 일도 잘 되도록 기도하여라.”
29 모세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제 제가 임금님 앞에서 물러가서 주님께 기도하겠습니다.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 임금님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서 떠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임금님이 우리를 속이고 백성을 보내지 않으셔서 우리가 주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일이 다시는 없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0 모세가 바로 앞에서 물러나와 주님께 기도하니,
31 주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파리가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에게서 모두 떠나서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게 하셨다.
32 그러나 이번에도 바로는 고집을 부리고,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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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이집트에 임한 네 번째 재앙, 곧 파리 재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말씀하십니다. 21절입니다. “네가 나의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나는, 너와 너의 신하들과 백성들과 너의 궁궐에 파리를 보내서, 이집트 사람의 집집마다 파리가 들끓게 하고, 땅도 파리가 뒤덮게 하겠다”그런데 22절에서 아주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날에 나는, 나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을 보내지 않아서,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겠다.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나 주가 이 땅에 있음을 네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이집트 땅 전역에는 파리 떼가 가득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는 파리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나 주가 이 땅에 있음을 네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23절에 “내가 나의 백성과 너의 백성을 구별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토요일에 나누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신 것은 바로 왕과 이집트,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시고, 믿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재앙은 단순한 멸망과 파괴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계획과 뜻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 내린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는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를 23절에 “내가 나의 백성과 너의 백성을 구별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세상 가운데서 구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은 이집트 땅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앙이 임하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집트 온 땅에 파리가 가득했지만 고센에는 파리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센이라는 땅이 특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구별하십니다. 택한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을 인지하고 비록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닌 구별된 자, 세상 사람들과 다른 하늘의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하고,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즉 세상 가운데 살되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임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왕은 이집트 온 땅에 파리가 뒤덮여 고통을 받자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합니다. 25절입니다. “이제 너희는 가되, 이 땅 안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보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26절에 모세가 말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부정하게 여기므로 이 땅 안에서는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것을 희생제물로 바치면, 그들이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우리를 돌로 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바로가 2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너희를 내보내서, 너희가 광야에서 주 너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겠다. 그러나 너희는 너무 멀리는 나가지 말아라”바로 왕이 가라고 허락합니다. 그런데 너무 멀리는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로의 이 말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하는 사단의 말입니다. “교회 나가고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은 좋다. 그러나 세상과 너무 멀어지지는 말아라” 이것이 바로 사탄과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유혹입니다. “신앙생활은 해도 괜찮아. 교회 다녀도 괜찮아. 예배 참석해도 돼. 그런데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마. 너무 세상과 다르게 살지는 마. 적당히 믿어. 적당히 타협해.” 이것이 바로가 제시한 “가기는 가되 너무 멀리 가지 말라.” 는 타협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가야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이집트를 떠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계속해서 바로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광야로 사흘 길을 나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단순히 노예에서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바로가 왕이요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이집트에서는 바로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했지만,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출애굽의 핵심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부터 우리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삶,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참된 예배는 단순히 교회에 와서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 순간들을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을 사용할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직장에서 일할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람을 대할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가정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내 삶이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뜻과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타협의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완전한 순종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세상 방식대로, 세상을 따르며 상황에 맞게 편하게, 내 뜻대로 신앙생활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부분적인 순종이 아닌 온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부만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하고 있는가? 나는 온전히 드리는 삶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바로 왕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보내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며 파리 떼를 처리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파리를 물리쳐 주십니다. 하지만 32절을 보면 “그러나 이번에도 바로는 고집을 부리고,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재앙이 사라지자 다시 마음을 바꿉니다. 이것이 사실 우리 인간의 죄성입니다. 위기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만 위기가 지나가면 다시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힘들 때에는 도와 달라고,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번 일만 해결해 주시면 정말 하나님 잘 섬기겠다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바로가 그랬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문제가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찾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응답받은 후에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형편이 좋아진 후에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상황이 우리의 믿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삶을 결정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고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세상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직장이, 시간과 삶 전체가 세상의 가치관과 방법을 따르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아가는 하나님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타협함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에게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말해도 내 삶의 주인이요 왕이 하나님이시에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길, 가라 하신 곳까지 살아가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며 살아가야 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며,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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