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스더 5:1

1 금식한 지 사흘째 되는 날에, 에스더는 왕후의 예복을 입고, 대궐 안뜰로 들어가서, 대궐을 마주 보고 섰다. 그 때에 왕은 어전 안의 왕좌에서 문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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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사건은 에스더가 이스라엘 민족을 도륙하고 그들의 모든 재산을 빼앗으라는 하만의 악한 계략에 아하수에로 왕이 허락하여 온 제국에 공문이 전달되어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하는 절망속에 있는 상황 속에서 왕 앞에 직접 나아가 왕의 자비를 구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 살 수 있도록 간청하라는 모르드개의 요청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삼일을 금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금식을 요청합니다.

삼일간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한 에스더가 1절을 보면 “금식한 지 사흘째 되는 날에, 에스더는 왕후의 예복을 입고, 대궐 안뜰로 들어가서, 대궐을 마주 보고 섰다”드디어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이 있는 궁궐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에스더가 대궐 안 뜰로 들어갔다는 것은 4장에 삼일전 모르드개에게 말한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말과 같이 죽을 수 있는 자리로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 왕이 부르기 전에 누구든지 왕이 거하는 궁궐 안, 어전 앞에 발을 들여 놓았는데 왕이 외면하면 죽음을 당하게 되게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이 에스더를 부른지 한달이 넘었습니다. 왕이 왜 에스더를 한달동안이나 보지 않는지, 그의 마음이 지금 어떠한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왕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행동입니다. 삼일간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는 믿음이 있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인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갔다는 이 모습 속에 에스더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 놀라운 믿음을 봅니다. 에스더는 비천한 상황에서 자랐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부모를 일찍 여의고, 적국의 나라에서 삼촌의 집 아래에서 식민지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가르치는데 나라가 망했습니다. 부모가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고아가 되어 타국에 끌려와 비참한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시냐? 어떻게 내 가족, 내 부모, 내 삶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시냐?”라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에스더는 그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으로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고 있었던 것도 있지만 페르시아의 왕후가 된 이후에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여전히 굳게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잃게 되는 경우가 물론 힘들고 어려울 때, 생각지 않은 재앙을 만났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신앙의 위기는 편안할 때,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교만함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기 보다는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편안함을 추구하며 신앙에서 멀어지기가 더 쉽습니다.

에스더는 세계 강국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삼일 금식하며 왕 앞에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한 시기가 왕후가 된 후 약 6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입니다. 가난하게 살다가, 눈치 보며 살다가 왕후가 되었다면 보통 사람 같으면 사람이 변합니다. 말투가 달라지고, 씀씀이가 달라집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에스더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에스더는 가난한 때나 부요한 때나, 고통 가운데나 편안한 가운데나, 낮은 자리에 있을 때나 높은 자리에 있을 때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믿음, 놀라운 신앙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고 가져야 할 모습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변하지 않는 신앙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스더와 비슷한 다니엘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동일하게 바벨론에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고 왕의 신하로 세움 받기 위해 훈련을 받을 때 다니엘은 마음을 정하여 우상에게 드려졌던 포도주와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나라의 총리가 되어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매일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를 사자굴에 들어가 죽임을 당하는 왕의 조서가 내려졌음에도 기도하는 신앙을 보였습니다.

삼일간의 금식 기도 후에 왕 앞에 나아가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 에스더의 모습을 묵상해 봅니다. 삼일간의 시간이란 인간적으로 갈등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삼촌 모르드개에게 “삼일 뒤에 왕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죽으면 죽겠습니다” 라고 대답은 했지만 에스더에게 왜 인간적인 걱정이나 근심이 없었겠습니까? “왕 앞에 나아갔는데 왕이 홀을 내밀어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왕은 지금 어떤 마음, 어떤 상태인가? 기분이 좋은가? 아니면 상해 있는가? 사람을 보내 왕의 상태를 알아보고 나간다면 언제 가는게 좋은지 물어 보는게 좋지 않을까? 내가 꼭 왕 앞에 나아가서 간청해야 하나? 그렇다고 들어 줄 것인가? 내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왕이 알면 어떻게 될까?”

아브라함도 100세 낳은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걸어간 시간이 삼일길이었습니다. 그 삼일이란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삼일의 시간 속에서 갈등하며 인간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스더는 그 삼일의 시간을 기도하며 금식했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따져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담대한 믿음, 지혜로운 마음,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간구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인간적인 고민과 생각, 따져 보며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자들이 아닌 진정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왕 앞에 나아가는 이 시대의 에스더가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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