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3:6-9
6 너희는 가난한 사람의 송사라고 해서 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
7 거짓 고발을 물리쳐라. 죄 없는 사람과 의로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나는 악인을 의롭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8 너희는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뇌물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의로운 사람의 말을 왜곡시킨다.
9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몸붙여 살았으니, 나그네의 서러움을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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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3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특별히 가난한 사람, 뇌물, 거짓된 재판, 그리고 나그네에 대한 말씀을 주십니다. 6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사람을 공의와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며, 가난하다고 그의 권리를 무시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6절입니다. “너희는 가난한 사람의 송사라고 해서 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가난하다고 해서 공의를 굽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의 편을 들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나누었지만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또한 가난한 사람의 송사라고 해서 치우쳐서 두둔해서도 안 된다.”
3절과 6절을 함께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편들지도 않으시고, 가난하다고 해서 무시하지도 않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입니다. 그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고 평가 할 때 그 사람의 가진 부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하기 쉬운 성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하면서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 공손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하기가 쉽습니다. 그 사람의 조건으로 판단하거나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명령은 야고보서 2장에서도 교회로 들어오는 사람 중에 옷을 화려하게 입고 금반지를 끼고 들어온 사람에게는 호의를 보이며 좋은 자리에 앉히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라고 외모로 차별 대우하는 것을 죄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기억하고 존중함과 친절함으로 예의와 편견 없이 대해야 합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뇌물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의로운 사람의 말을 왜곡시킨다.”뇌물이란 어떤 직위나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사사로운 편의를 얻기 위해 부정하게 건네는 돈, 물건, 또는 유형·무형의 이익을 뜻합니다. 뇌물은 주고 받는 것은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거짓이요 불의입니다.
원래는 옳고 그름을 공정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뇌물을 받음으로 뇌물을 준 사람에게 이익 되는 판결을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서로의 원함과 이익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뇌물을 주는 사람의 기준은 옳고 그름, 거짓과 참이 아닌 “나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만을 생각합니다. 진리가 아니라 이익이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매우 심각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하심을 무시하고 무너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쉽게 나는 뇌물하고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법정 소송이나, 기업들이 입찰을 받기 위해 싸울 때 사과박스에 수억의 돈을 넣어 은밀히 만나 카 트렁크에 전달하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뇌물을 주고받는 죄는 우리의 삶과 관계 속에서 더 미묘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 사람에게 잘해주면 나중에 나에게 도움이 되겠지. 이 사람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고 뭔가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잘해야지. 더 나아가 이 사람은 나에게 잘해 준 사람이니까 잘못한 것을 모른 척 해 주고 무조건 편을 들어 주는 것이 바로 영적으로 볼 때 뇌물을 주고받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공정한 판단보다 개인적인 관계와 이익, 감정을 앞세우는 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뇌물을 주고받지 말라고 하신 뜻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늘 뇌물의 유혹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느냐?” 돈입니까? 관계입니까? 체면입니까?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우리가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과 공의로움으로 살기 위해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도 모를 것 같을 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내게 유리하게 사실을 바꿀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믿음, 공의와 정직함으로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축복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따르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몸 붙여 살았으니, 나그네의 서러움을 잘 알 것이다”몸 붙여 사는 나그네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만 탈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살고 있었던 여러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도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집트의 노예처럼 취급 받으며 고생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함께 따라 나와 살게 된 것입니다. 같은 처지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소수로 함께 한 이방민족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시하고, 억압할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몸 붙여 따라 나와 살고 있는 나그네와 같은 이방 소수민족들을 대할 때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였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집트에 있었을 때 너희가 바로 왕과 이집트 사람들에게 받았던 억압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그 억압에서 구원하여 내셨는데 너희가 구원 받았다고 다른 힘없는 소수 백성들을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갖기 위해서 강조하시는 것이 “기억하라” 말씀입니다. 내가 과거에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었던 자였음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죄를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함을 받은 자임을, 아무 공로가 없지만 놀라운 긍휼하심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 된 은혜를 기억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살아야 우리가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며 감사함과 최선을 다해 주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살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받은 그 은혜, 그 용서, 그 자비, 긍휼함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습니다. 내가 어떠한 자였음을 잊습니다. 그러면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쉽게 무시하고, 억압하려고 하고, 실수를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고 살면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 받은 우리는 돈보다 정직을 선택하고, 나의 이익과, 나의 편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과 공의를 선택하고, 약한 자들을 배려하며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임을 늘 기억하여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