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4:13-14

13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배운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들은 그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다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14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트집도 잡을 수 없었다.

——————————————-

성령님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했던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며 지내던 앉은뱅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자 고침을 받고 걷고 뛰며 성전 안으로 들어가 찬양합니다. 그의 고침 받은 모습을 보고 놀란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몰려들어서 어떻게 이런 능력을 행했는지를 묻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복음을 전하며 그들의 죄를 지적하였고 그들에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으라고 전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 그리고 사두개파 사람들이 격분하여 그들을 잡아 가두었다가 그 다음날 예수님을 종교재판 하였던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가 모여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하는 사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심문을 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아서 종교 재판을 열고 하나님을 모독한 신성 모독죄로 사형을 선언하고 빌라도 총독에게 보내 군중들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 사형 언도를 내리지 않으면 폭동을 일으킬 것으로 위협하여 죄 없는 예수님에게 사형선언을 내리게 했던 그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대 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자리에 잡혀와 섰을 때 예수님이 끌려와 재판을 받았던 가야바 대제사장의 집에서의 일들이 떠 올랐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재판을 받을 때 베드로는 그 집 뜰에서 어떻게 일이 될지 관망하다가 문 지키는 그 대제사장 집 여종이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하나가 아니냐?” 라는 심문도 아닌 질문에 두려워서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들이 잡혀서 그들 앞에 끌려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처지가 되어 죽을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전에 베드로였다면 두려워서 벌벌 떨었을텐데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는 담대했습니다. 사도행전 4:10-12절을 보면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베푼 후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에게 바로 당신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야 구원자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죽게 했음을 지적하고 십자가에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셨고 부활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으로 자신들이 행했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예수 외에는 없다 라고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선포하며 가르치고 있을 때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주동자들이었던 대제사장들과 경비대장, 그리고 사두개파 사람들이 격분하여 들고 일어나 그들을 잡아 가두었고 다음 날 아침에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종교재판을 벌인 안나스와 가야바 대제사장 앞에 세워 똑같은 종교재판에 베드로와 요한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배운 것 없고, 볼품없는 갈릴리 뱃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베드로와 요한이 종교 지도자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두려워거나 떨지 않고 당당하고 담대하게 답변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도리어 놀랐습니다. 그것이 13절입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배운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분명 예수님과 함께 다녔던 자들었음을 알았기에 베드로와 요한도 엮어서 잡아넣으려고 했는데 이들이 놀라운 기적,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고친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였고 그가 그들 옆에 있었기에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4절입니다.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트집도 잡을 수 없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뱃사람이었습니다. 13절 말 그대로 배운 것이 없는, 원어로 보면 ‘문맹’ 이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이 나라의 최고법정이라고 하는 산헤드린 앞에서 구약 성경까지 인용하며 담대하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반박할 수 없게 변론하는 것을 보고 놀란 것입니다. 14절에는 트집 잡을 것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놀라운 성령의 충만함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마태복음 10:17-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미 이러한 상황을 아시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그들의 회당에서 매질을 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나가서 그들과 이방 사람 앞에서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관가에 넘겨줄 때에 어떻게 말할까 또는 무엇을 말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 때에 지시를 받을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뜻대로, 주님의 이름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고 경험하기에 죽음의 위협이 있는 자리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은 담대한 마음입니다. 두려움을 주는 것은 사단의 영입니다. 그렇기에 디모데후서 1: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에는 두려운 마음이 아닌 담대한 마음이 생깁니다. 성령의 충만함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경외함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세상이 두렵고, 사람이 두렵고, 죽음이 두렵습니다. 나는 어떠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무엇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세상적인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으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Follo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