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4:19-22

19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백성이 모두 그 일어난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으므로, 그들은 사도들을 처벌할 방도가 없어서, 다시 위협만 하고서 놓아 보냈다.
22 이 기적으로 병이 나은 이는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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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인 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앉은뱅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켜 고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던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종교재판으로 심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담대하게 변론하고 고침 받은 앉은뱅이가 옆에 있고 그 놀라운 기적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능력으로 생각하는 많은 백성들이 있기에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들이거나 처형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구세주와 주님되심을 더 이상 전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을 가르치지도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베드로와 요한을 놓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한 엄중한 경고를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한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9-20절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당신들의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해 전하고 가르치는 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와 요한에게 엄중하게 경고한 사람들은 그 당시 권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거역하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는 당신들의 말을 따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듣는 것이 옳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거역하는 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명령을 베드로와 요한은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절에도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후에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임을 명령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종교 지도자들이 비록 세상의 권력자이고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위협적인 세력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권세와는 비교할 수 없고, 하나님의 부르심은 받는 자로서 마땅히 주님의 명령과 사명을 따라야 하기에 그 명령과 사명을 따르지 말라는 종교 지도자들의 경고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라고 반문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따르겠다 라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대답과 담대함이 저와 성도님들의 대답과 담대함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 일인가를 판단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결정하고 행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인간의 원함, 사람의 말을 듣는가를 판단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택해야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내가 지금 결정하고 행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내 원함과 편함인지 분별하지 않고 내 뜻대로 행하는 분들, 혹은 기도함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과 감화 감동 속에 믿음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을 택하기보다 누군가의 말에 의해서, 눈치를 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하지 않고 굴복하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봅니다. 겉으로는 “그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 사람을 위해서” 라고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옳은 일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령의 충만함 속에 있었던 사도들과 성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신 이유는 그러한 외부적인 세력과 위협 속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욕심, 죄성을 이기고 분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옳은 일을 분별하여 믿음의 순종을 하라고 성령님을 보내 주셨고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담대하게 그 외의 세상의 유혹과 공격, 위협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 충만함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말씀과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종교지도자들의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경고와 명령을 들을 수 없다고 대답한 또 다른 이유를 20절에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나머지 사도들과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죽으신지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40일간 함께 지내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을 보았고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님을 그들이 받았고 그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동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들을 깨닫고 되고 확신하게 되었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여러나라 방언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을 때 수천명이 회개하고 구원 받는 것을 보고 더 나아가 앉은뱅이가 일어나 성전으로 걷고 뛰며 들어가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 놀라운 일들에 대해 전하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승천하심, 즉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원자이시오, 메시야이시며 다실 오실 재림의 주님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은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 죄인과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까이 하여 치료하시고 사랑하시는 삶, 구원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아낌없이 십자가 위에 던지신 삶, 고난과 조롱, 채찍과 못 박힘에도 어린양처럼 침묵하시며 감당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들었기에 예수님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원 받을 길을 보고 아는데 말하지 않고 전하지 않는다면 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살길을 아는데 죽음과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들에게 말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이 보이고, 예수님의 복음이 깨달아지고, 확신되면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전하고, 가르치고, 행했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일어났기에 본문 21절에 “백성이 모두 그 일어난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라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베드로와 요한과 같이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 삶에 행하신 구원하심, 돌보심, 지켜 주심, 축복하심, 응답하심, 역사하심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성령 충만의 삶이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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