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9:3-5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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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약 230km 나 떨어진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 성에 가서 예수 믿는 성도들을 잡으러 가는 길에 하늘에서 밝은 빛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사건입니다. 사울은 철저한 유대교인 즉 바리새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구약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셔서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들을 철저하게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해서 열심을 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거울로 주셨고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죄를 이기지 못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영원한 죄 사함을 받는 어린양으로 보내시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드려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세상 만민에게 주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죄 용서함과 구원을 위한 십자가이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하는 메시지를 스데반 집사를 통하여, 많은 성도들을 통하여 들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을 이단이라고 규정하여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일에 증인으로 섰었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전하는 성도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힘을 다하는 일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다마스쿠스에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당당하게, 살기등등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져 있는 예수 믿는 성도들을 잡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3절을 보면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연극을 할 때 배우에게 밝은 조명이 비추듯이 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고 했습니다. 눈을 뜰 수 없는 아주 강한 불빛이었습니다. 우리가 강한 빛을 보고나면 잠시 동안 볼 수 없는 현상을 경험하지만 사울은 그 밝은 빛을 보고 난 후에 사흘 동안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는 이 장면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다시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빛을 “해보다 더 밝은 빛”이라고 말합니다.

사울을 비추었던 그 빛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깨닫게 하는 밝은 빛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빛에 사울은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빛이 비춰졌을 때 사울은 땅에 엎드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울이 빛 앞에 엎드려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줍니다. 사울은 자신이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당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유명하다는 가말리엘이라는 선생의 문하에서 학식을 배운 자였습니다. 가문으로 따져도 명문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고 하는 자부심과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이단들을 잡아 들이는 열심을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어깨에 힘을 주고, 목에 힘을 주고 당당히 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의와 자기 교만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악한 핍박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끔씩 집 청소를 하면서 침대를 밀고 침대 아래와 벽 사이를 청소할 때가 있습니다. 냉장고를 밀고 그 뒤를 청소할 때가 있습니다. 앞에서 볼 때 침대와 냉장고 깨끗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밀고 그 아래 가려졌던 곳이 빛 가운데 드러나면 뭉쳐진 먼지들이 얼마나 가득하고 더러운지 비닐장갑을 끼고 물걸레를 가지고 와야지만 청소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봅니다.

사울은 하늘의 빛을 통하여 드디어 자신의 더럽고 추한 모습,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악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드디어 보는 것입니다. 그 빛속에서 빛속에서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는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의 질문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께서 질문하시는 음성을 듣는 것이 축복입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원함대로 생활할 때, 잘못된 길과 일을 하면서도 의롭고 바르다고 착각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위하는 것이 아닌 해하는 일을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해야 할 것은 단지 나의 문제를 해결 받고, 나의 편함과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빛을 구하고, 나를 바로 잡아 주는 하나님의 음성과 질문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과 그 음성과 질문을 듣고 바른 길, 바른 신앙, 바른 섬김으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밝은 빛 가운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라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사울은 “주님 누구십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그 질문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사울이 얼마나 경악했겠습니까?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 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을 잡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한 열심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반대로 하나님을 박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우상을 섬기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거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거부하고 더 나아가 박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기독교인을 박해하고 핍박하는 나라와 민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우리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우리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박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길이 아닌 길을 가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을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하고, 순종해야 할 때 순종하지 않고 내 고집, 내 원함, 내 목소리를 내고, 내 판단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정하여 비난, 정죄, 비판하는 모습들이 바로 하나님을 핍박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빛 가운데 서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거룩하신 빛 앞에 엎드러져야 합니다. 나를 바로 볼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질문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같고 바르게 사는 사람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박해하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사울이 다마스쿠스 길이 하나님의 밝은 빛과 하나님의 질문을 통해 자신의 추한 모습, 잘못된 신앙, 잘못된 길을 깨닫고 돌이키고 회복되는 축복의 길이 되었습니다. 다마스쿠스의 길이 하나님의 빛과 음성을 듣는 저와 여러분들의 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바로 보고 깨달아 진정 하나님을 위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바른 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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