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2:42-50
42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님의 밤’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43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다. 이방 사람은 아무도 유월절 제물을 먹지 못한다.
44 그러나 돈으로 사들인 종으로서 할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먹을 수 있다.
45 임시로 거주하는 타국인이나 고용된 타국인 품꾼은 그것을 먹을 수 없다.
46 어느 집이든지 고기는 한 집에서 먹어야 하며, 그 고기를 조금이라도 집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서는 안 된다. 뼈는 하나라도 꺾어서는 안 된다.
47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 다 함께 이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48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외국인이 주님의 유월절을 지키려고 하면, 너희는 그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받게 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는 본국인과 같이 되어서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
49 본국인에게나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타국인에게나, 이 법은 동일하다.”
50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은,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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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을 지키라는 명령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묵상하며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4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님의 밤’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그리고 47절에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 다 함께 이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라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애굽의 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하여 이집트의 신들을 심판하셨고, 마지막 죽음의 재앙에서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넘어가셨습니다. 넘어가다 즉 영어로 ‘Pass over’ 그래서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의로워서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어린양의 피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선하고 착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죄가 없어서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구원받을 만한 충분한 선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5:7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기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자임을 잊지 말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신앙의 출발점이요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43절부터 유월절의 구체적인 규례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은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44절에는 돈으로 사들인 종이라도 할례를 받으면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서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떤 신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왔느냐가 중요했습니다. 할례를 받음으로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결단이 있었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여 주님께 속한 사람이 되어 그 분의 뜻과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단지 교회에 다니고, 교회의 그룹에 속한 자가 아닌 “나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어 구원 받은 자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안에 함께 하는 참된 하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47절에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 다 함께 이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하나님께서는 일부 사람만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은 개인적인 사건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목적은 단순히 그들을 이집트에서 꺼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오는 것이 목적의 전부가 아니라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죄 사함을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로마서 6: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침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즉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 구원 받았다면,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인도하신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달라지고,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고,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우리의 인간관계가 달라지고, 우리의 돈을 사용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우리의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신 것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다른 것이 아닌 첫째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내어 주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기에, 거룩한 성도로 세워 주셨기에,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왕과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던 삶, 즉 세상에 사로잡혀서, 죄의 권세에 사로 잡혀 살던 삶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는 삶이 아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즉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끌고 가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야 합니다. 내 편안함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유월절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과 그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이제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십시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주님, 저를 구원하신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기억하며 날마다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하며 걷게 하옵소서.”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