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0:33-38
33 울타리를 만들어서 성막과 제단을 둘러싸고, 동쪽 울타리에다가 낸 정문에는 막을 달아 가렸다. 이렇게 모세는 모든 일을 다 마쳤다.
34 그 때에 구름이 회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35 모세는, 회막에 구름이 머물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으므로, 거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
36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이 성막에서 걷히면 진을 거두어 가지고 떠났다.
37 그러나 구름이 걷히지 않으면, 걷힐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38 그들이 길을 가는 동안에,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구름 가운데 불이 있어서, 이스라엘 온 자손의 눈 앞을 밝혀 주었다.
———————————————
오늘 본문의 말씀은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입니다. 출애굽기는 야곱의 가족들이 요셉이 총리가 된 이집트에 이주한 이후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이집트를 다스리면서 크게 번성한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여 노예로 삼아 다스릴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시고 부르시어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이집트를 심판하시며,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사건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광야로 이끄시고 시내산에서 그들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도록 율법을 주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기에 모세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제사 드리는 성막을 만들라고 자세히 성막의 규격과 그 안에 들어갈 기구의 재료와 모습, 그리고 하나님을 섬길 제사장들이 입을 옷의 재료와 모양을 어떻게 만들고 누구에게 맡기라고 까지 알려 주시는 내용이 35장부터 40장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성막을 다 만들었고, 그 성막을 다 만들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성막에 가득하게 임하신 장면으로 출애굽기가 마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울타리를 만들어서 성막과 제단을 둘러싸고, 동쪽 울타리에다가 낸 정문에는 막을 달아 가렸다. 이렇게 모세는 모든 일을 다 마쳤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성막을 만드는 모든 일을 마쳤습니다. 성막을 세우고, 성막에 필요한 기구들인 물두멍, 금등잔대, 떡상, 향단, 언약궤 배치하고, 제사장이 입을 옷을 알려주신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막에 모든 것을 만들고 갖춘 것입니다.
그러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4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구름이 회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하나님의 명령하신 그대로 성막이 완공시키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성막을 만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막을 하나님의 임재로 채우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성막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성막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아무리 힘쓰고 애써서 일하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열매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준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드리며 다음 세대를 위해 수고합니다. 이 모든 일은 귀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역사, 부흥, 열매는 우리가 계획하는 조직, 계획, 건물, 재정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명하신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이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섬김, 준비하고 섬기는 모든 일애 내 방법과 내 원함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명령과 뜻대로 순종하는 신앙이 되기를 돌아보고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섬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해야 해야 할 기도가 이것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열심 이전에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뜻 가운데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삶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수고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과 능력, 애씀과 노력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섬김과 사역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이 작고 부족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함께하시고 역사하신다면 그곳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가랴 4:6절에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35절 말씀입니다. “모세는, 회막에 구름이 머물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으므로, 거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모든 일을 다 마쳤을 때, 즉 하나님께서 명하신 성막을 알려 주신 그 수치대로, 모양대로, 재료로 다 만들어 놓고, 완성했을 때 그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고, 그 성막위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찬 성막의 모습이 우리에게 깊은 도전과 질문을 하게 합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우리 몸, 우리의 삶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성령님의 전이라고 하는 내 삶에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온전하게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더 넓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교회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 명령대로 믿음의 순종과 사랑으로 지어져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로 우리가 세워가고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느 부분에서 내가 하나님의 명하신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를 돌아보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마음을 살펴 주셔서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며 돌이키고 바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삶이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눈에 띄는 결과와 열매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놀라운 부흥이나 기적을 경험하는 삶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를 낮추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그분의 다스리심을 인정하는 삶, 즉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바로 36-37절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이 성막에서 걷히면 진을 거두어 가지고 떠났다. 그러나 구름이 걷히지 않으면, 걷힐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성막을 완성한 후에 행한 일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 위의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인도하심 따라 광야의 길을 움직였습니다. 성막위의 구름이 그대로 있으면 아무리 가고 싶고, 움직이고 싶어도 그대로 머무는 것입니다. 반대로 더 있고 싶고, 더 머무르고 싶어도 구름이 걷히고 움직이면 함께 따라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성막을 지으라고 한 것입니다. 편하게 살고, 보기 좋고, 멋진 건물을 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6절을 개역성경에는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를 때에 행진하였다”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는 삶인 것입니다.
38절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길을 가는 동안에,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구름 가운데 불이 있어서, 이스라엘 온 자손의 눈 앞을 밝혀 주었다”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여행하는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보여 줍니다.
낮에는 구름이 성막 위에 있었고, 밤에는 불이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구름이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행진했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에 관한 기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표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나안 땅이라는 목적지가 있었지만,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과 시간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때로는 빨리 이동해야 했을 것이고, 때로는 오랫동안 머물러야 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구름이 머물러 있는 기간이 일정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빨리 이동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앞날을 알지 못합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길이 열릴지, 언제 어려움이 끝날지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낮과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밤과 같은 시간도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가정의 문제, 자녀의 미래에 대한 염려, 교회의 앞날에 대한 고민이 우리를 찾아올 수 있습니다. 답답함으로 조급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제가 지금 가야 할 길은 어디입니까?” 그러나 출애굽기의 마지막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앞날을 모두 알지 못해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밤에 불이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두운 시간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낮에만 함께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들이 밝은 길을 걸을 때뿐 아니라 어둠 속을 지나갈 때에도 함께하셨습니다. 시편 23편 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어둠의 시간에 우리를 버리신 것도 아니고, 우리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때에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려야 할 때에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때에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아직 길이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조급함 때문에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가지 말고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미리 아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밝은 낮과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밤과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어떤 상황에 있든지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낮에도 함께하시고, 여러분의 밤에도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때에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출애굽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아직 광야에 있었습니다.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모든 여정의 시작점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임하셨고, 하나님의 구름과 불이 그들을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기록하며 끝을 맺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려는 가장 큰 복은 단순히 좋은 땅이나 풍성한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후에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계획이 확실해진 후에야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어도,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인 것을 출애굽기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붙드시고, 오늘 우리가 부른 “주님을 찬송하면서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찬양과 같은 결단으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