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4:1-3
1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3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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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란 하나됨을 지키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됨을 이루는 사랑과 순종의 삶, 그리고 이웃과 하나됨을, 화목함을 이루고 지키는 사랑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 됨을 이루고 지킬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지만 특별히 다른 사람들과 하나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결혼식만 올리면 신랑과 신부가 하나 되어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죽도록 사랑한다고 해서 결혼한다고 했지만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자녀들이 하나 되어 사랑하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함께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신앙 생활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 되어 사랑하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며, 등을 돌리며, 적대시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 됨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첫 번째 것은 바로 올바른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4:2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됨을 위하여 지켜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겸손과 온유함입니다.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겸손이 무엇입니까? 나를 낮추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겸손은 먼저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추는 자세입니다.
깨어짐이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자신이 하나님 앞에 피조물임을 잊지 않고 늘 하나님 앞에 낮추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사단이 그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말에 하나님 앞에 낮추기를 포기하고 교만한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정죄하고 탓하는 하나 됨이 깨어진 것입니다. 가인이 형제 아벨을 죽인 것도 바로 하나님 앞에 겸손함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깨어짐이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창세기 11장에 그 답을 볼 수 있습니다. 11장에는 노아의 홍수 뒤에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시날 땅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모인 이들이 또 다시 하나님 앞에 겸손함을 버리고, 자신들의 힘으로 홍수에서 구원을 받자고, 하나님처럼 되자고 바벨탑을 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낮아짐과 겸손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보다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위에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하면서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겸손함을 버리자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을 무너트리고 말을 혼잡하게 해서 하나 됨을 흩으셨습니다.
자세히 살펴 보십시오. 겸손함을 버리고 “내가, 나를” 이라는 교만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 됨이 깨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이 있을 때 하나 됨을 지키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함이 바로 하나님을 바로 아는 자들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신앙의 있는 겸손한 자들이 있을 때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낮추지 않는 겸손을 버리면 결국 깨어짐이 찾아옵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낮추는 겸손함으로 상대를 대하여 부부간에 하나되고, 가정이 하나되고, 교회가 하나되는 축복의 사람으로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 되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온유입니다. 온유라는 말을 약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로 온유라는 말 푸라오토스는 야생말이 길들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넓은 평야에서 자기 마음대로 뛰어 다니던 힘이 넘치던 말이 주인에게 잡혀 훈련되어 주인에게 컨트롤 되는 말이 된 상태가 바로 온유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적인 온유의 의미는 우리의 성품, 우리의 성질, 우리의 계획, 우리의 시간, 우리의 원함, 이 모든 것을 내가 하고픈 대로 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지배를 받는 것이 온유의 모습입니다. 내 원함이 있지만, 내 뜻대로, 내 감정대로, 내 이익대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컨트롤을 받는 것이 온유입니다.
다윗은 아무 잘못 없는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10년간 광야에 피해 도망다녔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하루 이틀도 아닌 10년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을 죽이려고 광야에 왔던 사울 왕이 자신이 숨어 있는 깊은 엔게디 동굴에 혼자 들어와 용변을 보는 것입니다. 단칼에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과 함께 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신 한 칼에 죽이겠다고 하지만 말립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운 자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죽일 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 자신이 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 뜻대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조종아래 둔 것입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모세 힘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의 왕자로 능력, 학력, 무술, 지위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그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에서 구원하려고 합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광야로 도망가 40년 자신의 욕망과 힘을 다 빼어 놓은 후에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 모세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에서 가장 승하도다” 라고 말하십니다. 40년간 온유의 훈련을 받아 온유함을 배운 것입니다. 모세가 온유함을 광야에서 40년동안 배우지 않았다면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백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광야에서 이끌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28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내게로 와서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 낮추는 겸손,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나의 말과 힘과 이익과 감정을 하나님의 뜻에 컨트롤 받는 온유를 배우기 원하십니다. 겸손과 온유가 있을 때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나간다면 겸손과 온유와 함께 오래 참음과 용납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이 두 가지, 오래 참음과 용납은 겸손과 온유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은 오래참고 용납합니다. 자세히 보면 교만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교만한 것을 못견뎌합니다. 교만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이 교만하면 못 참습니다.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용서 받은 자임을 깨달은 자들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과 연약함, 실수와 죄에 대해서 오래 참고 용납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오래 참음과 용서를 받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오래 참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우리를 용납하셨기 때문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는데 우리를 용납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 용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다른 사람들, 가족 안에서, 성도 간에 갈등하는 관계가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 오래 참음으로 사랑으로 용납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십니다. 올바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내 안에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를 낮추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온유함이 있을 때 하나됨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오래 참음과 용납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4:3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성령님이 주시는 평화의 띠로 우리 서로가 하나되게 하심의 부르심을 알고 힘써 지켜야 합니다. 우리 헤이워드 성도님 한분 한분이 모든 부분에서 용납하고 사랑하고 오래 참고 온유와 겸손함으로 하나됨을 위해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하나됨을 위해 힘쓰심을 통해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관계가, 우리의 교회가, 우리의 사회가 사랑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웃음이 넘치는 천국을 이루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