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1-10
1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몸 붙여 살던 땅 곧 가나안 땅에서 살았다.
2 야곱의 역사는 이러하다. 열일곱 살 된 소년 요셉이 아버지의 첩들인 빌하와 실바가 낳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데,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3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4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5 한 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서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형들은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6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셔요.
7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어요.”
8 형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 형들은 그의 꿈과 그가 한 말 때문에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9 얼마 뒤에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 “들어 보셔요. 또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
10 그가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었다. “네가 꾼 그 꿈이 무엇이냐? 그래, 나하고 너의 어머니하고 너의 형들이 함께 너에게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너에게 절을 할 것이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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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장은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인 요셉의 인생에 대해 시작되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특별한 사랑, 편애처럼 느껴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형제들의 시기와 미움을 불러왔습니다. 더 나아가 요셉이 하나님께 받은 꿈, 형들이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는 꿈 이야기를 말하자 형들의 미움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형들의 요셉에 대한 시기와 미움은 결국 요셉을 이집트의 노예로 팔아 버리게 됩니다. 그러한 인간적으로는 포기하고 끝난 것 같은 요셉이 인생은 하나님의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길로 바꾸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깨달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야곱은 요셉을 다른 아들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다른 아들보다 더 사랑한 이유는 노년에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했던 라헬에게서 난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모인 라헬이 일찍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채색 옷, 화려한 옷까지 입혀 줍니다. 그 당시 채색 옷은 단순히 좋은 옷이 아닙니다. 특별한 사랑과 후계자적인 의미가 담긴 옷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형들은 인간적으로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을 보면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아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의 예배와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할 때 아벨은 가인의 시기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은 다윗은 사울왕의 시기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기도의 사람이요 책잡힐 것이 없었던 다니엘은 동료 관리들의 공격과 모함으로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받은 독생자 예수님께서도 예수님도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잘못해서, 혹은 예의 없는 말과 행동을 해서, 욕심과 이기적인 모습 때문에 미움을 받는 것은 믿음의 시련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신앙을 지키려고 할 때, 세상 가치관을 따르지 않으려고 할 때, 악의 없는 마음으로, 좋은 의도로 섬기고자 할 때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핍박과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각적인 본성으로는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라는 억울한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영적으로, 믿음의 눈으로 본다면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좋은 믿음의 사람들도 경험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할 때 붙들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미움과 시기, 공격이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미움의 과정 속에서 요셉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훈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진리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기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것이 비록 힘들고 나를 어렵게 하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훈련시키기 위한, 더 나아가 우리는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할 때 믿음으로 굳게 서서 감사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모습과 태도를 보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 이하를 보면 요셉은 두 가지 꿈을 꿉니다. 그 꿈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첫 번째 꿈은 추수하여 묶어 둔 형들의 곡식 단들이 요셉의 곡식단에 절하는 꿈입니다. 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이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이루실 미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꿈이었습니다. 즉 훗날 형들과 부모까지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야곱의 가족들과 이집트, 그리고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대흉년에서 구원할 요셉 앞에 나오게 될 일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꾼 꿈을 듣고 형들은 요셉을 더 미워합니다.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 아버지 야곱조차 “네가 꾼 그 꿈이 무엇이냐? 그래, 나하고 너의 어머니하고 너의 형들이 함께 너에게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너에게 절을 할 것이란 말이냐?” 라며 꾸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과 비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모든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한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지고 불타버려 잿더미가 되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 할 때 조롱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세상의 눈에는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환영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기대하면 실망하고 상처받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을 성경 속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모습 속에서 보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도 복음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면서 인정보다 방해, 핍박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느냐 아니냐, 이해하느냐 이해하지 않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거짓없는 마음으로 행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삶입니다.
요셉이 인생을 보면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사명과 부르심을 받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훈련의 시간을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요셉의 꿈만 기억합니다.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총리로 세우시기 전에 긴 훈련의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형들에게 시기와 미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배신과 버림받습니다. 깊은 구덩이에 던져지고, 노예로 팔리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시간을 지나갑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요셉을 높이지 않으셨습니까? 그릇을 준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꿈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감당할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환경보다 요셉의 내면을 먼저 만지셨습니다. 교만함을 낮추시고, 완전한 겸손,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바라는 믿음을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어 사명을 주시지만 동시에 훈련도 주십니다. 기도했는데 바로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시간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시간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모세는 지도자가 되기 전에 미디안 광야 40년을 지나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전에 광야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죽는 그날 까지 훈련받아 준비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월드컵이 두주 후면 월드컵이 시작됩니다. 2002년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는 기적과 같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4강 독일과의 시합때 경기장에 내건 대형 카드 섹션의 문구가 “꿈은 이루어진다” 였습니다. 우승을 염원하는 문구였지만 독일에게 안타깝게 졌습니다.
인간의 꿈, 인간의 야망은 무너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꿈은 결국 이루어집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요셉의 꿈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없애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인간의 방해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단은 막으려 했지만 하나님은 이루셨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왜 이런 고난이 오는지, 억울한 일이 생기는지, 왜 길이 막히는지,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믿음의 사람은 그 문제, 어려움, 환경보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이 완성하십니다. 빌립보서 1:6절의 바울의 확신과 같이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요셉의 인생은 형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들린 인생이라는 것을 믿고 굳건히 서기를 원합니다. 생각지 못한 어려움과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 이러한 시간을 통해, 나를 통해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가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