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12-28
12 그의 형들은 아버지의 양 떼를 치려고, 세겜 근처로 갔다.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가 알고 있듯이 너의 형들이 세겜 근처에서 양을 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너의 형들에게 좀 보내야겠다.” 요셉이 대답하였다. “다녀오겠습니다.”
14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너의 형들이 잘 있는지, 양들도 잘 있는지를 가서 살펴보고, 나에게 와서 소식을 전해 다오.” 그의 아버지는 헤브론 골짜기에서 그를 떠나보냈다. 요셉이 세겜에 도착하였다.
15 어떤 사람이 보니 요셉이 들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가 요셉에게 물었다. “누구를 찾느냐?”
16 요셉이 대답하였다. “형들을 찾습니다. 우리 형들이 어디에서 양을 치고 있는지, 나에게 일러 주시겠습니까?”
17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너의 형들은 여기에서 떠났다. ‘도단으로 가자’고 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 가서 도단 근처에서 형들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서, 그를 죽여 버리려고, 그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면서 말하였다. “야, 저기 꿈꾸는 녀석이 온다.
20 자,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르우벤이 이 말을 듣고서,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건져 내려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22 피는 흘리지 말자. 여기 들판에 있는 구덩이에 그 아이를 던져 넣기만 하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자.” 르우벤은 요셉을 그들에게서 건져 내서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23 요셉이 형들에게로 오자, 그들은 그의 옷 곧 그가 입은 화려한 옷을 벗기고,
24 그를 들어서 구덩이에 던졌다. 그 구덩이는 비어 있고, 그 안에는 물이 없었다.
25 그들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고개를 들고 보니, 마침 이스마엘 상인 한 떼가 길르앗으로부터 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낙타에다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27 자,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고, 차라리 그 아이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자. 아무래도 그 아이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피붙이이다.”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28 그래서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갈 때에, 형제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스무 냥에 팔았다. 그들은 그를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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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지만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 넘기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12-18절을 보면 요셉의 형들이 멀리 세겜 근처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야곱이 요셉을 보내 형들의 안부를 살피게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을 감당하기 위해 세겜으로 갔습니다. 지금 머무고 있는 헤브론에서 세겜까지의 거리가 약 80km입니다. 세겜에 도착해서 찾아 보니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는 말을 듣습니다.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약 20-30km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안부를 알아 오라는 아버지 명령에 충실하게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형들은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알아보고 요셉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18절입니다.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서, 그를 죽여 버리려고, 그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음모를 꾸몄다” 그들이 처음부터 살인자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질투와 시기였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것에 대한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철없는 동생의 눈치 없는 꿈 이야기나 자신들의 잘못을 고자질 하는 모습에 대한 기분 나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와 질투가 미움이 되고, 미움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결국 살인의 계획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큰 죄는 순간적으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미움, 작은 시기, 작은 불평과 원망 하나를 방치하면 점점 자라납니다. 특별히 성경은 시기와 질투를 품는 것을 경고합니다. 야고보서 3:16절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요셉의 형들이 행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누군가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 성공한 것을 볼 때 배가 아픕니까? 아니면 함께 기뻐해주고 칭찬하고, 인정해 줍니까?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품고 살면 결국 자신도 망하게 하고 함께 하는 공동체도 무너뜨립니다. 믿음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축복을 함께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요셉의 형들이 멀리서 오는 요셉을 향하여 서로 마주 보면서 “야, 저기 꿈꾸는 녀석이 온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는 비웃음과 조롱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20절에 “자,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여 주신 꿈,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막고 방해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일을 하려고 하는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형들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온 요셉은 형들에게 잡혀서 채색옷을 빼앗깁니다. 벌거벗김을 당하여 깊은 구덩이에 던져집니다. 그때 지나가는 이스마엘 상인들을 보고 그들의 손에 은 20개를 받고 팔아 넘깁니다. 형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원치 않는 큰 고난의 구덩이에 던져진 것입니다.
요셉이 어떠한 마음, 어떠한 감정이었겠습니까? 두렵고 절망스러웠을 것입니다.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목 놓아 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노예 상인에게 넘겨졌고 그들의 손에 넘겨져 시편을 보면 쇠사슬에 목과 손과 발이 묶여 끌려 갔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시간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깊은 구덩이에 던져진 것 같은 시간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 알고 믿고 확신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떠나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우리를 구덩이에 던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국 그 구덩이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사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여서 깊은 구덩이에 던지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 먹었다고 말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막형 르우벤이 요셉을 나중에 건져 내려고 “우리 손으로 피를 흘리지 말고, 요셉을 죽이지 말고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기만 해서 죽이자” 라고 말하여 던져진 것입니다. 그 모든 일 속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요셉은 깊은 구덩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쓰임 받는 종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사람이나 환경, 사단이 아닌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담대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25-28절을 보면 형들은 요셉을 죽이지 않고 은 스무 개를 받고 노예 상인에게 팔아버립니다. 요셉의 형들은 분명 “이제 요셉은 끝났다. 요셉의 꿈은 헛된 꿈이 되었다. 이제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이 알지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더 큰 계획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자신들이 노예로 이집트에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집트로 보내신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의 꿈을 없애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낮추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높이려 하셨습니다.
훗날 요셉은 자신을 배신하고 노예로 팔았던 형들이 총리가 된 자신 앞에 죽임을 당할까, 자신들을 복수할까봐 두려워 엎드려 있을 때 형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판 것을 이제는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소서. 이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당신들 앞서 나를 보내셨음이니이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요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우리는 현재만 보지만 하나님은 미래를 보십니다. 우리는 지금 흘리는 눈물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후에 열릴 열매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상황만 보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일하고 계십니다.
요셉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했습니까? 죽임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갈 정도로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이 사건만 보면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훗날에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왜 이런 병이 들었는지, 이런 실패가 겪는지, 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지, 당장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고, 배신을 당하여 노예로 팔려갑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점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요셉의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요셉의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할 것이 악한 사람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더 큽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깊은 구덩이를 축복으로, 눈물을 간증으로, 실패를 승리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가 보여야 할 참된 신앙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