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8:26–30

26 유다는 그 물건들을 알아보았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를 그 아이와 결혼시켰어야 했는데” 하고 말하였다. 유다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27 다말이 몸을 풀 때가 되었는데, 태 안에는 쌍둥이가 들어 있었다.

28 아기를 막 낳으려고 하는데, 한 아기가 손을 내밀었다. 산파가 진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아이의 손목에 감고서 말하였다. “이 아이가 먼저 나온 녀석이다.”

29 그러나 그 아이는 손을 안으로 다시 끌어들였다. 그런 다음에 그의 아우가 먼저 나왔다. 산파가 “어찌하여 네가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이 아이 이름을 베레스라고 하고,

30 그의 형, 곧 진홍색 실로 손목이 묶인 아이가 뒤에 나오니, 아이 이름을 세라라고 하였다.

———————————————————-

창세기 38장은 우리가 1절부터 전체를 읽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는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가 결혼하여 에르, 오난, 그리고 셀라를 낳습니다. 그리고 맏아들 에르가 다말과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확히 어떤 죄라고 말하지 않지만 에르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함으로 그를 죽이십니다. 다말과의 사이에 아들이 없었기에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수 다말과 결혼을 시켜 아들을 낳아 형의 자손을 이어가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오난은 아들을 낳아도 자기 아들이 안되는 것을 알고 형수와 동침할 때마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지 않으려고 정액을 땅바닥에 쏟아 버립니다. 이런 그의 행동을 하나님께서 악하게 보시고 오난도 죽게 하십니다. 둘째 아들까지 죽자 유다는 막내 셀라를 며느리 다말에게 주었다가는 두 아들처럼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친정에 보내고 오래 동안 셀라와 결혼시키지 않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다말이 대를 잇기 위해 양털을 깎으러 유다가 딤나로 갈 때 길가에서 얼굴을 가리고 창녀인 것처럼 유다를 속여 관계를 맺게 되어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되었다는 사건을 기록한 내용이 창세기 38장입니다. 인간적으로 불편한 사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불편한 사건, 인간의 약함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연약함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줍니다. 유다는 야곱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8장에서 보이는 유다의 모습은 믿음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에르도 가나안 여인인 다말과 결혼시켰습니다.

그의 아들 엘은 얼마나 악한 자였는지 하나님께서 보다 못해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오난도 자신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여 죽게 됩니다.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까지 잃을까 두려워 다말에게 이행해야 할 가문의 계승을 위해 지켜야 할 막내 아들 셀라와 결혼시키지 않고 친정으로 돌려보냅니다. 다말은 버려진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의 한 지파가 되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되는 사람이었는데 믿음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도 아들들도 신앙을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로서 시아버지로서도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즉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도 잃어 버린 사람이 유다였고 그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유다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볼 때 있을 수 없는 다말의 행동을 통하여 태어난 자녀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계보를 이어가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부족함, 우리의 실패보다 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자격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닌 자격 없는 사람을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다말에게 부어 주신 것입니다. 다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녀는 유다의 첫째 며느리로 시집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남편은 악인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지만 그 생활은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는 남편을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풍습을 따라 첫 남편의 남동생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기적이게 일부러 아들을 갖기 위해 악을 행합니다. 그로 인해 두 번째 남편도 잃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다말을 탓했을 것입니다. 속된 말로 남편을 잡아 먹는 여자라고 비난하고 재수없는 여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막내 아들과 결혼해야 하는데 시아버지 유다가 다말을 쫓아냅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 자녀가 없는 과부의 삶은 매우 비참했습니다. 생존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다말은 억울한 피해자였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말은 가문의 계승을 위해 아주 위험하고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방법을 통하여 아기를 갖습니다. 바로 시아버지를 속이고 시아버지 유다와의 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13-18절에 나오는대로 창녀로 변장하여 유다를 속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유다가 가지고 다니던 도장과 허리끈, 그리고 지팡이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신이 임신한 아기가 바로 유다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내 놓습니다.

다말이 행한 방법 자체를 성경이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유다의 입을 통해 중요한 선언을 기록합니다. 26절에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이 말은 다말이 완벽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다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회개의 고백입니다.

유다는 친정집에 가 있는 다말이 임신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다말을 화형에 처해 죽여야 한다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나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정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 그 처지, 억울함, 눈물, 정당하게 대우 받지 못하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다말이 행한 일들을 겉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유다의 고백을 통하여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놀랍게도 다말은 쌍둥이 아들 베레스와 세라를 낳습니다. 베레스를 통하여 그의 후손에 룻의 남편 보아스가 나오고, 보아스를 통하여 다윗이 나오고,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님이 탄생하십니다. 그렇기에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에 다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놀라운 일입니다. 족보에는 여자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말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다말은 유대인도 아닌 가나안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말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넣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족보가 은혜의 족보임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들의 가문에서만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버림 받은 사람들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다말을 통하여 태어난 베레스는 하나님은 인간의 죄보다 크신 분이시오, 인간의 실패를 넘어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베레스라는 이름의 뜻은 “터뜨리다, 돌파하다”입니다. 다말은 하나님께서 자신 앞에 막힌 길을 뚫어 주시고, 은혜로 돌파하게 하신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도 각자의 창세기 38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후회되는 과거, 숨기고 싶은 실패,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도 일하십니다. 사람은 “끝났다. 길이 없다. 꽉 막혔다” 라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베레스“ 즉 “내가 새 길을 만들겠다. 막힌 담과 벽을 뚫게하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는 우리의 부족함보다 큽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막힌 곳에서 베레스처럼 새로운 길을 열어 가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 낙심하지 말고 실패의 자리에서, 고통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베레스의 역사를 써 나가는 승리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Follo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