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4:31-32

31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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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구원 받은 성도들, 성령님을 마음에 모신 새 사람이 된 우리들이 버려야 할 부정적인 요소들, 즉 옛 성품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며 따르고 실천해야 할 새 사람의 모습과 성품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씀이지만 다시 한번 버려야 할 것과 입어야 할 예수님의 성품을 입고 사는지 돌아보는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버려야 할 마음과 성품이 무엇인지 31절에 말씀합니다.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버려야 할 마음이 먼저는 악독이라고 알려 줍니다. 악독이란 영어로 Bitterness입니다. 즉 원한이나 증오와 같은 적대감을 뜻합니다. 누군가에게 당했다고 하는 일, 누군가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 받은 마음을 풀지 못하고 그 일로 인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증오하는 쓴 뿌리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악독입니다.

격정과 분노란 말 그대로 내 마음과 기준에 들지 않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생각되지 않는 일이나 상황으로 인해 절제하지 못하고 내는 격렬한 분노와 화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토요일에 함께 나누었던 26-27절의 말씀인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와 같이 절제되지 못한 분노로 인해 사단에게 틈을 주어 해서는 안되는 말과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 죄를 짓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와 마음을 닫고, 마음에 쓴 뿌리를 내리는 악독을 품게 하여 하나됨을 깨트리는 격정과 분노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나 상황, 사람 때문에 분노하는 감정이 드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감정에 사로잡혀 이끌림대로 죄를 짓는 모습을 버리고 성령님께 사로잡혀 성령의 열매인 오래 참음과 인내, 온유함으로 격정과 분노를 이기라는 것입니다.

소란과 욕설을 개역성경에서는 “떠듬과 비방”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소란 떠듬, 그리고 욕설과 비방이란 다툼과 싸움을 유발하는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말과 행동을 말합니다. 그리고 욕설과 비방이란 다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는 말과 행동입니다.

욕설, 비방, 험담, 떠듬이라는 말을 들으면 해서는 안되는 말과 행동이라고 우리가 인정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나서 나누는 대화들을 살펴보면 대화의 대부분이 누군가에 대한 험담, 누군가에 대한 비난과 비판을 하는 것을 봅니다. 쉽게는 내가 싫어하는 정치인이나 정당, 더 나아가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잘못하고 있다는 대화들을 합니다. 더 좁게는 직장에 대해서, 동료들에 대해서 험담과 비난 비판을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성도들의 대화 속에서도 교회와 성도, 직분자들에 대한 험담과 비난, 비판 하는 것을 쉽게 듣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들에게 그러한 비난과 험담, 비판과 정죄함을 버리라고 명하십니다. 마태복음 7:1-2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야고보서 4:11-12절에도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라고 책망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죄성을 가진 죄인들입니다. 결점이 없는 사람, 허물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내 기준과 판단으로 정죄하고 비난하면 그 사람 역시 그렇게 할 것들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 비난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향항 예수님께서“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을 향하여 31절에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32절의 말씀입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갚지 못할, 해결하지 못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많은 죄를 용서하여 주셨음을 먼저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명령하신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며 용서하라는 명령은 우리의 힘과 결단만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죄성으로는 나에게 어려움을 주고,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게 상처와 손해를 입힌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친절하게 대하고, 더 나아가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용서, 그 친절, 그 긍휼, 그 사랑과 용서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오래 참아 주시고, 친절하게 대하시며,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하심으로 내 죄를 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그 사랑, 그 용서, 그 축복을 받았음을 깨달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향하여 “원수를 사랑하라. 용서하라, 불쌍히 여기라. 친절히 대하라” 라고 명령하시 않으시고 32절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교회 안에 있지만 교회는 의인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온전한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병원과 같이 병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더 나아가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고집스럽고 교만한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은 받았지만 교회는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이나 흠도 없고 점도 없는 변화되고 성숙한 사람들만이 모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교회 안에는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죄의 목록과 같이 불의, 탐욕, 시기, 분쟁, 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죄를 짓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죄인인 줄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게 무슨 교회냐?”라고 말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곳이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닌 죄인을 부르시고 그들의 더러움을 씻어 주시고 구원하여 변화시키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변화 받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으로 아직 병든 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고, 변화 받아야 할 많은 부분들이 있는 영적 병자이지만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은 자들이기에 하나님께 받은 그 사랑과 그 은혜로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는 것을 실천해 나가는 곳이 바로 교회요 우리가 보여야 할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다시한번 31-32절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버려야 할 것과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우리가 받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성령님의 감화감동하심 속에 깊이 깨닫고, 늘 기억함으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 사랑과 은혜로 새사람에 합당한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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