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 3:26-29
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분이 침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27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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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모든 만물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 세상에서 가장 큰 자라고 칭찬하시고 인정하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함께 읽은 침례요한입니다. 마태복음 11:11절을 보면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라고 극찬을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적인 기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침례요한은 세상에서 가장 큰 자라고 칭찬받을 만한 모습이 있지 않습니다. 침례요한은 한 평생 광야에서 평생 수도생활, 은둔생활을 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중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유대 광야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회개하라는 설교를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던 말라기 선지자 후에 400년 만에 나타난 선지자라고 침례요한에게 몰려들면서 유명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의 사역은 단지 약 6개월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선지자로 인정을 받으며 죄를 회개하고 침례를 주다가 이스라엘의 북쪽을 다스리던 안디바 헤롯 왕이 자기 이복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강제로 취해서 데리고 사는 모습을 죄라고 담대하게 비판함으로 감옥에 잡혀 들어가고 그 헤로디아의 미움을 받아 목이 잘려 죽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침례요한은 정말로 짧은 인생을 살았고, 특별히 이룬 것도 없는, 더 나아가 비참한 죽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침례요한을 향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는지를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침례요한이 가장 큰 자라는 칭찬을 받았던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22-23절을 보면 “그 뒤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셔서 거기서 그들과 함께 지내시며 침례를 주셨다. 살렘 근처에 있는 애논에는 물이 많아서 요한도 거기서 침례를 주었다. 사람들이 나와서 침례를 받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북쪽 갈릴리 지방에서 남쪽 유다지방으로 내려 오셔서 요단강 근처에서 침례를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때 그 지역에서는 이미 침례요한이 말씀을 전하고 침례를 주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침례요한을 400년 만에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로 믿고 침례요한에게 나와서 죄를 자복하고 침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침례요한이 있는 지역으로 오셔서 침례를 베풀며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침례요한에게 사람들이 더 많이 왔지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시간이 지나면서 침례요한에게 오는 사람은 점점 적어지고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 침례요한의 제자들이 2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신 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 분이 침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침례요한을 존경하고 따랐던 제자들이 자신들이 따르고 있는 스승 침례요한이 점점 예수님으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낀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동안은 자신들의 스승인 침례요한의 말씀과 그분에게 침례를 받으러 왔었는데 이제는 예수님께 몰려가는 모습을 보고 질투와 시기 그리고 초조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당사자인 침례요한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모두 남보다 내가 더 잘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하고 잘되면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 배가 아프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침례요한은 예수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습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요단강에서 사역을 시작했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나와 회개하며 침례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곳에 들어와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이 아닌 예수님께로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분 나빠하고 더 나아가 인간적으로 화를 낼 만한 일인 것입니다. 비록 침례요한 자신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에 이런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았겠습니까?“내가 지금 열심히 사역하고 많은 사람들이 내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 회개도 하고 침례도 받고 있는데, 지금 내 사역이 잘 되고 있고 부흥하고 있는데 조금만 기다리셨다가 시작하시면 안되나? 그것도 다른 지역이 아닌 내가 사역하고 있는 바로 맞은 편에서 사역하셔서 내게로 오는 사람들을 다 데려 가셔야 하나? 조금 먼 곳에서 사역하시면 어디 덧나나? 이왕 하실 것 나에게 와서 의논도 하시고 또는 함께 동역하자고 하시면 안되었나?” 라는 이런 인간적인 마음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침례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이 질투와 분노와 초조함으로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께로 가고 있습니다” 라는 원망의 말을 들었을 때 “그래 해도 해도 너무한다. 기본적인 예의도 없네” 하며 함께 원망하고 불평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침례요한이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27절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나에게 오지 않고 예수님께로 가는 것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의 사역을 거두시고 예수님의 사역이 펼쳐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그렇게 알고 받겠다는 것입니다.
침례요한은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역의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사역을 망친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오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두 가는 것을 보아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침례요한은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면 누가 더 사역을 많이 하든지, 누가 더 크게 하는지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없이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침례 요한에게는 누가 더 큰일을 하고 누가 더 중요하고, 누구를 더 알아주고 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이 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선포 되는 일인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천국의 큰 자입니다.
침례 요한은 내가 사역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나에게 오는 것 보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당연히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시기하지도, 내 사역이 줄어든다고 초조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 3:29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등장하셔서 자기에게 오던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께서 가서 자기 사역이 없어질 상황인데 예수님 때문에 내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더 확장시키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으로 오실 분임을 알기에 자신은 잠시 예수님의 들러리 노릇하는 것만으로도, 아니 들러리로 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의 그림을 보고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사명을 알고 사는 자들이 바로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교회에서 내가 하지 못하는 사역을 누군가 맡아서 해나간다면 그것을 기뻐하고 칭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나보다 누군가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 복음을 위해 열심을 내고 더 일을 잘한다면 그것에 대해 박수를 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내가 인정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큰 그림을 보고 다른 사람의 사역을 기뻐하고 격려하고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더 나아가 누군가 주님의 나라와 뜻을 위해 더 잘 할 수 있도록 돕고, 섬기고,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나를 통하여 많은 열매가 맺지 않아도 누군가를 통하여 좋은 열매가 맺어지고 하나님께서 더욱 크게 쓰시는 모습을 기뻐하며 박수 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러한 천국에서 큰 자로 인정받는 마음으로 섬기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