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베드로전서 4:7-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8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

말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쓰라고 하신 일은 먼저는 기도입니다. 나의 원함과 뜻, 욕심과 필요를 채워달라는 미신적인 기도가 아닌 정신을 차려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감사와 찬양, 그리고 믿음의 순종으로 헌신하고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기도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니다. 그것이 어제 나누었던 7절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8절에 우리가 말세를 살아갈 때 삶에 나타내야 할 모습을 명령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말세 특징 가운데 하나가 디모데후서 3장의 말씀대로 자기만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4:12절에 예수님께서 말세에 관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말세에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요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보면 말씀 그대로 진정 사랑해야 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아닌 자기 자신과 돈을 사랑하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성도된 우리들이 말세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 무엇보다 성도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수많은 신앙의 덕목들 절제, 인내, 충성, 온유, 믿음이 있는데 가장 먼저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랑은 모든 신앙의 근원이며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참된 신앙생활, 바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의 열매는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사랑이 없는 신앙, 사랑이 없는 사역, 사랑이 없는 관계, 사랑이 없는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아무리 겉으로 화려할지라도 그것은 껍데기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에 사랑이 없다면, 교회를 섬기는 그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것은 교만함, 자기 의, 자기도취가 되는 껍데기이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아무리 큰 희생을 하는 섬김일지라도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랑으로, 사랑의 동기와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인정하십니다.

주님께서 무엇보다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명하신 것은 사랑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당시 초대교회는 외부로부터의 박해, 경제적 어려움, 여러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함으로 서로의 다름으로 인한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존재하기도, 하나됨을 이루기도 너무도 어려운 상황과 조건들이었습니다.

그러할 때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 더 나아가 힘 있게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강한 지도력이나 완벽한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하는 마음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높이고, 존중하고, 낫게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랑이 교회를 붙잡고, 사랑이 상처를 치유하며, 사랑이 연약함을 품습니다. 하나됨을 이룹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단순히 “사랑하십시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뜨겁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뜨겁게”라는 헬라어는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한, 지속적인, 지치지 않는 사랑을 뜻합니다. 즉, 감정적인 사랑이나 가벼운 호의가 아닙니다. 내게 잘 할 때, 내 마음에 들 때만 보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명하신 뜨겁게 사랑하라는 의미는 힘들어도 붙잡는 사랑, 상처받아도, 실망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 소망 가운데 끝까지 가는 사랑, 희생을 감수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흘려보낼 때 비로소 ‘뜨거운 사랑’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7절에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라” 고 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내 감정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과 부어주심으로 흘러내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할 때 그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어 준다고 알려 주십니다. 이 말씀은 죄를 묵인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랑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를 다루는 가장 깊고 온전한 방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사탄의 특징은 우리에게 죄를 짓도록 유혹을 하고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고발을 하는 것입니다. 가책을 통해서 고통 속에 살도록 하는 것이 사탄의 특징입니다. 성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은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어서 사람들에게 퍼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의롭고 바르고, 올바른 것이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사실 사단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참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이해하고 용서하고 온유함으로 회개와 회복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의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약하고 실수합니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용서하고 용서받는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사랑은 상대의 죄와 허물, 부족함을 지적하고, 드러내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대신 덮고, 기다리고, 회복시키는 은혜의 능력입니다.

이 뜨거운 사랑이 없으면 모든 관계는 결국 깨어집니다. 공동체가 깨어집니다. 관계가, 교회가 깨어지는 수많은 이유를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이 결핍입니다. 관계가, 공동체가 깨지는 이유는 어떠한 큰 죄 때문이 아니라 작은 오해, 작은 감정, 작은 말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 작은 오해, 감정, 실수, 부족함과 잘못이 용서하지 못할 큰 죄로 보이고 그렇기에 비난과 정죄로 내 몰기에 깨어지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깨트림과 무너짐의 불씨를 꺼버리고, 갈등이 자라나지 않도록 덮어 줍니다. 사랑은 평안을 만들어내는 영적 힘입니다. 사랑은 회복의 길을 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셨다’는 표현은 구약에서 속죄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덮으셨기에, 우리는 용서받았고 새 사람이 되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사랑으로 허다한 죄를 덮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한번, 두 번 정도 봐준 것을 얼마나 큰일을 한 것처럼 생각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 우리에게 명하신 뜨거운 사랑은 한번, 두 번의 덮어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허다한 죄를 덮어야 합니다. 허다한 부족함을 인내함으로 받아주고 기도해 주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감사와 감격함 속에 살아야 그 사랑이 흘러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사랑이 명령인 요한복음 13:34절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라는 말씀처럼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내 곁에 어떠한 모습의 사람도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으로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Follo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