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6:1-13
1 사람들이 땅 위에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그들에게서 딸들이 태어났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3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생명을 주는 나의 영이 사람 속에 영원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살과 피를 지닌 육체요,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다.”
4 그 무렵에, 그 후에도 얼마 동안, 땅 위에는 네피림이라고 하는 거인족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었다. 그들은 옛날에 있던 용사들로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5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7 주님께서는 탄식하셨다.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9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10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 이렇게 세 아들을 두었다.
11 하나님이 보시니,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12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땅은 사람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었고, 그 끝날이 이르렀으니, 내가 반드시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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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7,8,9장은 우리가 잘 아는 노아 홍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인 1절부터 13절은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게 된 배경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홍수로 심판하시게 되었습니까? 왜 그렇게 무서운 물의 심판을 하시게 되었습니까? 심판의 이유와 심판의 결과와 심판의 은혜를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나누기를 원합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땅 위에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라고 노아 홍수의 사건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17-24절을 보면 가인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번성하며 하나님 없는 세상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5장을 보면 가인에 의해 아벨이 죽은 후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는 셋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셋은 에노스를 낳고 그의 자손은 누구를 낳고 하며 노아의 때가 되면서 사람들이 땅위에서 배가가 되면서 번성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 및 많은 선진국들이 출산률이 낮아져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의 인구는 점점 많아져서 자원의 고갈, 그리고 공해, 기후 변화를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물로 심판하신 이유가 이렇게 지구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인구 조절을 하기 위해서 심판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홍수로 심판하시게 된 이유에 대해 5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심판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죄악이었습니다. 그 죄악은 사회적으로, 눈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의 죄악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든 마음의 생각과 계획까지 부패하고 있었다고 본문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죄악들이었는지에 대해서 6:11-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니,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인류를 물로 심판하시게 된 죄악을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썩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무법천지’입니다.
‘썩었다’ 라는 ‘패괘’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샤하트’ 의 의미는 “썩다, 부패하다, 망가지다, 완전히 파괴되고 무너지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썩었다는 것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부패되어 폐기해야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기에, 하나님을 버렸기에 물고기가 물 밖에서 나와 땅에서 죽어 썩어가는 것과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사랑하심, 정의와 공의, 긍휼하심과 은혜에서 벗어나 살인, 간음, 욕심, 방종, 폭력으로 가득하여 도저히 회복시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표현으로 무법천지가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뜻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자기 감정대로, 자기 욕심대로 가인과 그의 후손인 라멕처럼 살인을 자랑하고 위협하고 자기 원하는대로, 마음대로 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무법자의 패역함을 가인의 후손들만이 아닌 하나님께서 아벨을 대신하여 세우신 셋의 자손들, 즉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 택함받는 자들도 그러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저마다 자기의 마음에 드는 대로” 이것이 죄악의 끝에 있는 모습입니다. 사사기 마지막 장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죄악 가운데로 계속해서 돌아가는 모습이 동일했습니다. 사사기 21:25절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자신들이 왕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삶이 바로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와 살게 되면서 점점 사람들은 늘어났는데 노아의 시대에 와서 보니까 온 땅이 하나님을 버리고 살아가는 무법천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한 죄악이 넘쳐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가인의 후손을 그렇다고 치고 어떻게 아벨을 대신하여 주신 셋의 자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던 의의 자손들이 죄 가운데 빠지고 가인의 후손들과 함께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죄인의 길로 완전히 빠지게 되었냐는 것입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를 2절에서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2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고 사람의 딸들은 누구입니까?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인데 땅에 있는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어난 사람들이 4절에 나오는 거인 네피림 족속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리이스 신화에서 그러한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가장 힘이 쎈 헤라클레스나, 메두사의 머리를 자른 페르세우스가 신과 사람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그것을 타당한 해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천사들이 장가가고 시집간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도 천사와 같이 되는데 천국에서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2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입니까? 셋의 자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인이 죽인 의인이요 참된 예배를 드렸던 아벨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입니다. 셋이란 뜻이 하나님이 ‘대신했다, 선택했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딸들은 첫 살인을 한 하나님께 버림받은 가인의 후예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으로 택하신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와 결합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대로 말한다면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결합, 즉 서로 다른 가치관의 결합을 이야기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가치관이 혼합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하나님을 믿는 아들들은 하나님의 가치관과 경건성을 이어가는 결합을 해야 하는데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연합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믿는 자들에게 명령합니다. 우리가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면 신앙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만나지도, 교제하지도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앙의 가치관을 양보하고 타협하는 관계가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양보하며 함께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신앙만큼, 하나님의 명령과 뜻대로 사는 삶을 흔들리게 하고 변질되게 하는 관계는 해서는 안됩니다.
믿는 성도들이 갑자기 타락하지 않습니다. 서서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타락합니다.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라고 한 것처럼 세상의 편함과 죄의 유혹은 강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이 경건을 타협하기 시작할 때 신앙을 타협하기 시작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이 죄악으로 썩고 무법천지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세상의 가치관이 성도들에게 들어오고, 교회에 들어오면 죄악으로 썩어져 심판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셋의 자손들마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게 되고 죄악이 관영하고 부패하고 강포로 이 땅이 가득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창세기 6:7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탄식하셨다.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창세기 6:13절 말씀에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땅은 사람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었고, 그 끝날이 이르렀으니, 내가 반드시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겠다” 사람들의 죄악이 넘쳐나서 더 이상 내가 참지 못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120년이란 시간을 주십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든 시간임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마지막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을 주십니다. 그리고 결국 그 당시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홍수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심판의 원인과 결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멸망시키시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구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8절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부패한 시대 가운데 죄 가운데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물로 멸망을 받았지만 오직 노아의 가정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에 대해 창세기 6:9절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우리가 이 시대가 이래서,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환경이 이래서 나도 이렇게 밖에 살수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시대가, 모든 사람이, 환경이 부패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의인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노아를 평가할 때 노아는 의인이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노아가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라고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아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두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방주를 만들라고 했을 때 노아가 어떻게 했습니까?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방주를 어디에서 만들라고 하셨습니까? 산 위에서. 얼마동안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습니까? 120년간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죄악이 관영한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의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 구원의 자리를 만드는 은혜의 사람, 구원의 방주가 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