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17:10-14

10 너희 가운데서,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너와 네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 세우는 나의 언약, 곧 너희가 모두 지켜야 할 언약이다.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게 하여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이다.
12 대대로 너희 가운데서, 남자는 모두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너희의 집에서 태어난 종들과 너희가 외국인에게 돈을 주고서 사온 종도, 비록 너희의 자손은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
13 집에서 태어난 종과 외국인에게 돈을 주고서 사온 종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나의 언약이 너희 몸에 영원한 언약으로 새겨질 것이다.
14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 곧 포피를 베지 않은 남자는 나의 언약을 깨뜨린 자이니, 그는 나의 백성에게서 끊어진다.”

———————————————-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령하는 내용입니다. 10-11절입니다. “너희 가운데서,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너와 네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 세우는 나의 언약, 곧 너희가 모두 지켜야 할 언약이다. 너희는 포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게 하여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이다”

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하여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어난지 8일이 되면 남성의 성기의 표피를 자르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통하여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과 다른 민족과의 차별성을 두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시는 의미를 바로 알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본문은 단순히 고대의 한 풍습이나 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즉 “언약”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언약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읽은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남자 모두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신 이유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이다”라고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15장에서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17장에서는 그 언약을 더욱 분명히 확증하시며, 눈에 보이는 “표징”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한 언약이란 한마디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된 자, 부족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기 위한 관계와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약속을 받은 것을 늘 기억하며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함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도록 몸에 새겨지는 표징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그런 표징을 받습니다. 그런 의식을 행합니다. 바로 침례입니다. 주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결단한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침례를 받고, 침례를 줍니까? “이제 나는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겠습니다. 즉 나는 이제 옛 사람은 죽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라고 선포하며 주님의 뜻대로만 살겠다는 헌신과 결단을 성도들 앞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할례를 받으라고 한 것은 다른 민족들과 구별된 표시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육신의 몸에 보이는 구별된 표식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할례를 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된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은혜를 받은 자요,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도하심따라,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관계가 되었기에 세상과 다른 삶,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언약을 몸에 새겨 늘 기억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 땅의 성공을 기준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기준, 즉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세상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은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분별하여 살아갑니다. 그것이 할례를 받은 자가 살아야 하는 삶의 자세요 마음이요,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고통이 따르는 순종이 있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남자들이 할례, 즉 포경수술을 위생을 위해 하는 사람들도 있고, 수술을 받을 때 마취를 한 후에 표피를 자르기에 할례를 받을 때 고통이 없지만 마취가 풀리면 며칠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34장에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의 성주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있은 후 디나를 아내로 달라고 요청하러온 성주와 그 아들을 야곱의 아들들이 속이고 복수하려고 성내의 모든 남자들에게 자신들과 같이 할례를 받으라고 한 후에 할례를 받고 3일 뒤에 통증으로 고통 받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 단 둘이서 칼을 가지고 성 안의 모든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할례는 결코 쉬운 명령이 아닙니다. 고통이 따르는 어려운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고통을 요구하는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종은 대부분 고통스럽습니다. 불편합니다. 손해처럼 느껴지고 인간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이해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 맞고, 내가 하고 싶고, 마음에 들 때만 순종하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희생이 있더라도 순종하는 신앙입니까?

14절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엄중하게 말씀하십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 곧 포피를 베지 않은 남자는 나의 언약을 깨뜨린 자이니, 그는 나의 백성에게서 끊어진다” 하나님의 언약과 명령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아닙니다. 14절의 말씀을 더 쉽게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순종하지 않는 자는 나의 백성에서 끊어진다. 나와 상관 없는 자이기에 멸망할 것이다”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14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에서 하신 말씀과 동일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야고보서 2장에도 “행함이 없는 믿음, 순종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고 분명한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신약 성경은 할례를 새로운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에 참된 할례는 육체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행하는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외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입니다. 옛 사람, 죄를 끊어내는 결단,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고통스럽더라고 순종하려는 중심이 바로 “영적인 할례”입니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요 언약과 축복의 약속을 받게 되는 참된 성도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언약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가? 참된 할례를 받은, 마음에 영적 할례를 받은 자답게 삶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에 애쓰고 있는가? 내 삶에 세상과 구별된 살아 있는 믿음의 모습과 열매들이 있는가? 간절한 기도함으로 그러한 참된 할례 받은 구별된 구원 받은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Follo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