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 35:16-18

16 그들이 베델을 떠나 에브랏에 아직 채 이르기 전에, 라헬이 몸을 풀게 되었는데, 고통이 너무 심하였다.

17 아이를 낳느라고 산고에 시달리는데, 산파가 라헬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셔요. 또 아들을 낳으셨어요.”

18 그러나 산모는 숨을 거두고 있었다. 산모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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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야곱이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마지막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성경에 나오는 라헬의 삶을 살펴보며 우리가 붙들고 추구해야 할 참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깨달아 세상의 헛된 것이 아닌 참된 행복과 축복을 바라고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라헬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무려 14년을 수고했습니다. 그만큼 라헬은 야곱에게 사랑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결혼한 라헬에게 인생의 가장 큰 소원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녀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않는 언니 레아는 아들을 네명이나 낳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자녀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자 창세기 30:1절을 보면 라헬은 남편 야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당시 자녀는 단순한 기쁨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결혼한 여자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든 아들을 갖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몸종 빌하를 남편 야곱의 첩으로 주어 단과 납달리를 낳게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낳은 자식이 없기에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깊은 괴로움 속에 살았습니다. 언니 레아를 경쟁자로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라헬은 언니의 몸종 실바가 두 아들을 낳고, 더 나아가 레아가 두 아들을 더 낳는 것을 보고 자신의 아이를 낳기를 간절히 원하는 기도함으로 태를 여셔서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라헬은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고백하며, 그 아들의 이름을 ‘더하다’라는 뜻을 가진 ‘요셉’이라 지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라헬이 요셉을 낳은 후 약 12-15년이 지난 후에 그렇게 더 원하던 두 번째 아들 베냐민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 순간 라헬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장면,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적으로 원하는 인생의 가장 큰 소원조차도 우리의 생명을 붙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라헬은 늘 비교하며, 남이 가진 것을 시기하며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누군가 가지고 있는 것, 라헬에게는 더 많은 아들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원하는 것이 대부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만족할 텐데. 이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할 텐데. 이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것이 없을텐데”라는 생각으로 삽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것도 인간 영혼의 참 만족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은 돈도, 놀라운 성공도, 건강도, 내가 원하는 사람을 가져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만족이 되십니다. 그래서 시편 73:25절은 말씀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으로 인해 참된 행복과 만족을 깨닫고 누릴 수 있는 영적인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적으로는 부족하고 없는 것이 많지만 모든 상황 속에서 나를 아시고, 채우시고, 위로하시며, 소망과 충만함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다윗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장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라고 고백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가장 큰 소원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오는 놀라운 행복과 축복, 만족함속에서 주님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매우 아이러니합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과 한 사람이 죽는 슬픔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베냐민이 태어났지만 사랑하는 라헬이 죽습니다. 야곱으로 보면 귀한 아들을 얻었지만 아내를 잃었습니다. 이것이 이 땅의 인생입니다. 인생은 언제나 기쁨만 있지 않습니다. 슬픔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웃는 날이 있으면 우는 날도 있습니다. 얻는 날이 있으면 잃는 날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3장은 말씀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도 모두 눈물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다윗, 바울도 그랬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며 소망 가운데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라헬은 고통 속에서, 난산으로 죽어가며 출산한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부릅니다. “베노니”는 “슬픔의 아들, 고통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라헬의 정확한 사망 나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당시 사건의 연대기를 종합해 볼 때 약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나이라고 추정합니다. 젊은 나이입니다. 안타까운 나이입니다. 라헬은 자신이 그런 이른 나이에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기에 ‘베노니’ 슬픔과 고통이 아들이라는 이름을 떠 올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베노니’ 라는 이름 그대로는 받지 않고 ‘베냐민’ 이라고 바꿉니다. 베냐민이라는 이름의 뜻은 직역하면 히브리어로 아들을 뜻하는 ‘벤’과 오른손, 혹은 남쪽을 뜻하는 ‘야민’이 결합된 이름입니다. “오른손의 아들, 남쪽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손’은 힘, 권능, 축복, 그리고 영광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오른손의 아들’은 매우 귀하고 든든하며 자랑스러운 아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가 죽은 슬픈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 소망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기에 막내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으로 바꾼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 속에서 “베노니” 같은 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실패의 시간, 아픔의 시간, 고통의 시간 … 그때 믿음의 사람은 절망의 이름 ‘베노니’ 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손인 “베냐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라헬은 비록 죽었지만 그녀가 낳은 아들 베냐민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라헬은 자신의 모든 미래를 다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녀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은 단지 나 하나 잘사는 것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비록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인생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 가운데 만족하는 인생, 그리고 고난과 절망, 슬픔 속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베냐민을 붙드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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