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22-29

22 그 밤에 야곱은 일어나서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나루를 건넜다.

23 야곱은 이렇게 식구들을 인도하여 개울을 건너 보내고, 자기에게 딸린 모든 소유도 건너 보내고 난 다음에,

24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25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

26 그가,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였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27 그가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28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29 야곱이 말하였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그는 “어찌하여 나의 이름을 묻느냐?” 하면서, 그 자리에서 야곱에게 축복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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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이 큰 위기를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살던 야곱을 고향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지만 끝마무리르 제대로 하지 않고 라반에게 말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떠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라반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좇아 왔지만 그래도 말씀대로 순종하여 고향 땅으로 떠나는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지켜 주셨습니다.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에 대해서 ‘선악간에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하시는 개입으로 라반과의 관계가 화해의 돌기둥을 세우며 축복 가운데 떠나 올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가벼웠겠습니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더 이상의 문제와 어려움이 야곱에게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말씀대로 고향으로 가는 길에 삼촌 라반이 분노하여 좇아오는 것보다 더 큰 위기를 만납니다. 바로 형 에서입니다. 아버지와 자신을 속인 야곱을 미워하며 죽이겠다고 한 그 분노가 20년이 지났는데도 누그러지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고향 땅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에서는 야곱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400명을 데리고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얼마나 두렵습니까? 얼마나 큰 위기 입니까?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위기들을 만납니다. 어떤 위기는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있지만 때로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가 있습니다. 야곱은 형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고 화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여러번 종에게 많은 소와 양과 염소와 낙타들을 선물로 보냅니다.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인간적으로 에서에게 많은 예물을 종들과 함께 두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야곱에게는 군사도 없습니다. 에서를 대항할 힘이 없습니다. 살기 등등해서 오면 가족, 재물, 가축, 자신도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에서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밤에 두 아내와 열한 아들을 건너보내고 홀로 만은 야곱이 마지막으로 무엇을 합니까? 기도합니다. 얍복 강에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들고 기도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야곱이 홀로 얍복 나루에서 기도하는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놀랍게도 에서의 마음이 녹아 내려 화목함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바뀝니다. 이 사건과 이 기도가 우리의 사건과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야곱이 어떤 기도를 합니까? 9-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시겠다고, 도우시겠다고, 고향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어떻게 했는지를 24절에 어떤 이가 나타나 밤새도록 씨름했다고 합니다. 호세아 12:3-4절을 보면 누구와 씨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모태에 있을 때에는 형과 싸웠으며, 다 큰 다음에는 하나님과 대결하여 싸웠다. 야곱은 천사와 싸워서 이기자, 울면서 은총을 간구하였다”구체적으로 천사와 겨루었고 울면서 그에게 간구했다고 말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붙들고 밤새도록 씨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달라고, 이 위기를,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울면서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씨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씨름에서 이김으로 문제와 위기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야곱과 같은 위기가 있지 않습니까?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짓누르는, 답이 없어 보이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어찌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러한 어려움들, 시험과 영적 공격들을 끈임없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눈을 떠서 영적인 위기를 느끼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우리도 얍복강의 기도와 같은 기도가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얍복강의 기도를 통해 두 가지를 봅니다. 첫째, 기도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간절히 매어 달리는 것입니다. 대충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울면서 나의 사정을 봐달라고 나를 살려달라고, 나를 책임져 달라고, 변화되게 해 달라고. 그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천사가 떼어 놓기 위해서 엉덩이 뼈를 칩니다. 뼈가 관절이 어긋나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 생사가 기도에 달려 있다고 믿고 간절함으로 포기하지 않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 기도 밖에 자신이 살 길이,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든 것입니다. 엉덩이 뼈가 다쳤으면서도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보낼 수 없다” 고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간절한 이 기도가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기도에 대한 비유를 말하면서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 나쁜 재판장, 불의한 재판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간청합니다. 호소합니다. 처음에는 듣지 않다가 나중에는 번거롭게 하니까 들어 주었습니다. 이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매달렸을 때 들어주었는데 밤낮 부르짖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부름을 듣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내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정말 없다는 것입니다. 매어 달리며 간구하는 사람들을 주님이 원하시고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식이, 애씀과 노력, 지혜가 일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한 기도가 응답을 이룹니다. 나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매달려야 합니다. 사무엘 차두위크 “사단이 성도를 공격하는 딱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기도하지 않는 봉사, 헌신은 사단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무릎 꿇고 기도할 때 벌벌 떱니다. 얍복강에서 기도했던 간절한 야곱의 기도가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둘째, 얍복강의 기도는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야곱은 기도할 때 환경이 바뀌기를 기도했을 것입니다. “에서의 마음을 바꿔 주옵소서. 문제가 해결되게 하옵소서. 위기가 넘어가게 하옵소서. 환경을 변화시켜 주옵소서”우리도 이러한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어떠할 때는 상황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상황을 변화시켜 주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기도 중에 나를 변화시키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와 씨름하십니다. 엉덩이 뼈를 쳐서 골절시킵니다. 가장 단단하고 큰 뼈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내 힘과 능력을 붙들고 살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야곱은 엉덩이 뼈가 골절되고 어긋나게 되며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야곱은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보낼 수 없습니다”“내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라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그래 내가 네 문제를 해결해 주마, 에서의 마음을 바꿔주마”라고 하시기 전에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무슨 뜻입니까? 이름을 물으시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인격, 삶의 모습을 묻는 것입니다. 야곱이 대답합니다. “나는 야곱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목을 붙잡는다는 것입니다. 속이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기꾼이라는 말입니다. 야곱은 인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형 에서를 속였습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삼촌 라반도 속였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야비하게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짐승의 털을 붙이고 형의 옷을 입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삼촌 라반도 속입니다. 치밀하게 계획합니다. 얼룩지고 점 있는 가축을 달라고 한 후에 색깔 있는 가지를 먹여서 얼룩지고 점 있는 새끼들을 낳을 수 있게 하는 술수로 얻었습니다.

또한 속이는 인생이니까 속고도 살았습니다. 7년을 라헬을 얻고자 일했습니다. 그러나 라반에게 속습니다. 한번이 아니라 일한 삯을 10번이나 속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사는 인생이었지만 속으로는 미워하고 원망하고 속고 속이는 인생이었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이름도 야곱이 아닙니까?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속임을 당하고 내 힘과 능력으로 살려고 애쓰는 인생이 아닙니까?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속고 속이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느냐? 네 힘으로, 내 능력으로, 세상의 방법으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런 인생에는 답이 없다. 그런 인생에는 소망이 없다. 이름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야곱이라는 이름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동안 인간의 방법으로 형도 이기고 아버지고 이기고, 외삼촌도 이겼습니다. 그런데 결국 어떠한 자리에 놓였습니까? 두려움과 문제와 어려움과 절망의 자리에 놓였습니다. 그것이 야곱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통치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속이고 내 힘으로 살고, 주도하는 인생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다스리시고 붙드시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과거가 물러가고 나의 계획, 나의 주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허벅지 관절을 치셨습니다. 예전 성경은 환도뼈라고 되어 있습니다. 두를 환 자에 칼 도 자입니다. 칼을 두르는 뼈입니다. 고대 군사들은 환도뼈에 칼을 차고 다녔습니다. 너의 칼을 내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힘을 빼라는 것입니다. 주도권을 내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인도하고 주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얍복강의 축복을 받는 기도의 삶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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