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30-31
30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 그는, 엉덩이뼈가 어긋났으므로, 절뚝거리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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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야곱이 인생의 가장 큰 위기 앞에서 얍복 강가에서 홀로 밤을 새워 하나님과 씨름한, 기도한 후에 날이 새고 고백한 말입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밤새 기도하고 날이 새어갈 무렵,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전의 야곱은 자기 머리를 믿고, 자기 계산을 믿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얍복강 이후에 야곱은 달라집니다. 육체적으로 보면 엉덩이 뼈, 환도뼈를 다쳐 절뚝거리기 시작합니다. 겉으로 보면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때부터 진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30절을 보면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라고 말합니다. 이 야곱의 고백 속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믿음의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는 믿음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뵈었다” 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이전에도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벧엘에서도 하나님을 만났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만남은 다릅니다. 이전에는 “조상들의 하나님”이었다면 이제는 “나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나의 이름을 바꾸어 주시고, 환도뼈를 치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을 만난 뵌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자동으로 믿음이 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데서 시작됩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 속에서 나에게 힘과 위로를주시고 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고난 가운데 나를 지키시고 평강을 주시고, 붙잡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경험한 “나의 하나님” 의 신앙을 갖지 못합니다. 야곱은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체를 그대로 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이고 깊은 만남을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책으로, 뉴스로,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전해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경험하는 관계인 것입니다.
믿음은 깨어짐을 통해 성숙해집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 기도함 속에 씨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엉덩이 뼈를 골절시키십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오히려 절뚝거리며 걷게 되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상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면 더 강해지고, 더 완벽해지고, 더 능력 있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왜입니까? 야곱이 자기 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은 평생 자기 능력을 믿고 살았습니다. 머리가 좋았습니다. 계산이 빨랐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내려 놓게 하신 것입니다. 내 발로 가고 싶은데로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닌 절뚝거리게 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세상적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 교만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 겸손하고, 온유하고, 더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믿는 강함을 실패를 통해, 상처를 통해, 좌절감을 통해, 무기력함을 통해 깨트리십니다. 왜냐하면 깨어져야 하나님을 붙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약함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함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야곱의 절뚝거림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은혜의 흔적이었습니다. 아곱은 다리를 절게 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알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야곱이 30절에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구나다” 라고 말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과 대면하여 씨름했음에도 죽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아 있는 것,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전 야곱은 자기 능력으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살아갈수록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온 것임을 알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은혜를 더 많이 말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기에 더욱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상처를 가지고도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본문은 야곱이 절뚝거리며 브니엘을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가 없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그 상태로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도 상처는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몸의 상처가 남고, 마음의 아픔이 남고, 고통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상처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절뚝거렸지만 이전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완벽해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와 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을 뵈 후에 해가 떠올랐습니다. 31절입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 이 표현은 단순한 시간 설명이 아닙니다.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에 새로운 아침이 시작된 것입니다. 브니엘의 밤은 어두웠습니다. 두려움이 있었고, 씨름이 있었고, 깨어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밤이 지나자 해가 떠올랐습니다. 해가 솟아올라서 빛을 비춰 주었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밤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의 밤이 지나면 은혜의 아침이 옵니다. 눈물의 시간이 지나면 회복의 시간이 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브니엘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브니엘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함으로 간절한 기도함 속에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삶을 통해 참된 믿음을 세워지고, 깨어짐으로 성숙해지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상처와 고난 속에 비록 절뚝거리는 걸음이지만 주만 바라며, 주님의 길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