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4:1-17

1 레아와 야곱 사이에서 태어난 딸 디나가 그 지방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

2 히위 사람 하몰에게는 세겜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세겜은 그 지역의 통치자였다. 세겜이 디나를 보자, 데리고 가서 욕을 보였다.

3 그는 야곱의 딸 디나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디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디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4 세겜은 자기 아버지 하몰에게 말하였다. “이 처녀를 아내로 삼게 해주십시오.”

5 야곱이 자기의 딸 디나의 몸을 세겜이 더럽혔다는 말을 들을 때에, 그의 아들들은 가축 떼와 함께 들에 있었다. 야곱은 아들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6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청혼을 하려고, 야곱을 만나러 왔다.

7 와서 보니, 야곱의 아들들이 이미 디나에게 일어난 일을 듣고, 들에서 돌아와 있었다. 세겜이 야곱의 딸을 욕보여서, 이스라엘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 곧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였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은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8 하몰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 세겜이 댁의 따님에게 반했습니다. 댁의 따님과 나의 아들을 맺어 주시기 바랍니다.

9 우리 사이에 서로 통혼할 것을 제의합니다. 따님들을 우리 쪽으로 시집보내어 주시고, 우리의 딸들도 며느리로 데려가시기 바랍니다.

10 그리고 우리와 함께 섞여서, 여기에서 같이 살기를 바랍니다. 땅이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리를 잡고, 여기에서 장사도 하고, 여기에서 재산을 늘리십시오.”

11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에게 간청하였다. “저를 너그러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드리겠습니다.

12 신부를 데려오는 데 치러야 할 값을 정해 주시고, 제가 가져 와야 할 예물의 값도 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많이 요구하셔도, 요구하시는 만큼 제가 치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디나를 저의 아내로 주시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13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이 그들의 누이 디나를 욕보였으므로,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짐짓 속임수를 썼다.

14 그들은 세겜과 하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에게 우리의 누이를 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15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들 쪽에서 남자들이 우리처럼 모두 할례를 받겠다고 하면, 그 청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16 그렇게 하면, 우리가 딸들을 당신들에게로 시집도 보내고, 당신네 딸들을 우리가 며느리로 삼으며, 당신들과 함께 여기에서 살고, 더불어 한 겨레가 되겠습니다.

17 그러나 당신들 쪽에서 할례 받기를 거절하면, 우리는 우리의 누이를 데리고 여기에서 떠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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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사건은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이라는 사람에게 강간당한 후에 그 일을 해결하려고 하려고 하는 야곱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세겜과 그의 아버지의 반응과 행동들을 보여 줍니다. 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세상의 죄악과 상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분노할 사건이나 문제를 만나고 당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어떠한 모습인지를 바로 알고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디나, 세겜, 하몰, 야곱, 그리고 디나의 오빠들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디나가 강간을 당한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잘못된 반응과 태도로 인하여 해결이 아닌 끔찍한 복수와 살인이라는 죄로 치닫는 것을 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잘못된 반응들을 통해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야곱의 딸 디나로부터 시작됩니다. 1절입니다. “레아와 야곱 사이에서 태어난 딸 디나가 그 지방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 디나는 가나안 여인들을 보러 나갔다는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행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단순한 외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하나님께 구별된 언약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나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가나안 땅의 문화를 선망하며, 그곳에 발을 디디기 시작한 것입니다.

1절에 가나안 여인을 보러 나갔다는 말은 딱 한번 나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그들과 점점 더 가까이 하며 사귀게 되고, 스며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거룩함을 위해 세상의 것들을 분별하여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야 합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구별된 자로 선별되어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움 받은 삼손도 이방 여인을 만나러 나갔다가 그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이 시대에 죄 된 세상의 문화가 너무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야곱은 형 에서와 헤어진 뒤에 올라가는 길에 20년 전 라반의 집으로 도망칠 때 하나님을 만나고 축복의 약속을 받은 곳, 하나님께 서약한 벧엘로 가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고 고향집으로 바로 올라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세겜 성에 도착해서 딸 디나를 강간한 세겜의 아버지인 하몰의 가족들에게 은 백냥을 주고 밭을 사서 장막을 치고 지냈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벧엘로 올라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세겜 성 근처에 머물렀습니다. 부분적인 순종은 결국 위험한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디나는 세겜 성에 들어가 이방 여인들과 어울리며 세상과 우상의 문화를 가까이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세상과 이 세대가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며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을 분별하여 살라” 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2절에서 5절을 보면 그 지역의 통치자로 있는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합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 하몰에게 디나를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합니다. 반면 야곱은 세겜이 디나를 욕보였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들들이 들에 있었기에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으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전체를 보면 야곱의 침묵은 믿음의 침착함이라기보다 책임 회피에 가까웠습니다. 딸이 끔찍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침묵합니다. 사무엘하 13장에도 다윗이 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강간하고 내 버린 사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분명 크게 분노했지만 장남 암논을 아끼는 마음에 아무런 처벌이나 조치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2년간 치밀하게 복수를 준비하여 양털 깎는 축제 때 암논을 살해하고 도망쳤다가 훗날 왕이 되고자 다윗에게 반역을 일으키게 되어 큰 전쟁이 일어나고 죽임을 당하여 가문이, 나라가 큰 고통을 당합니다.

야곱이 침묵했던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자신은 이 지역에 땅에 갓 이주해 온 이방인이자 소수 정착민이었고 세겜은 그 지역의 통치자였기에, 자신의 힘만으로는 세겜과 그 성읍의 족속들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야곱의 영적인 상태가 문제였습니다. 마땅히 올라가야 할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풍요롭고 살기 좋은 도시인 세겜에 땅을 사고 성읍 앞에 장막을 치며 안주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잊고, 세상의 문화와 풍요에 동화되어 영적으로 둔감해졌기 때문에, 가정 내의 죄악과 위기 앞에서도 영적 지도자로서의 공의로운 분노나 결단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침묵과 무기력함은 결국 아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분노함으로 온 성의 남자들을 죽이고 도적질 해 오는 잔인한 복수를 하게 만드는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야곱과 같이 침묵하기 쉽습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불편함으로 인해, 더 나아가 영적으로 무디어진 상태로 인해 마땅히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것을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기가 쉽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불편함, 손해와 보복과 어려움을 당할까봐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고 담대하게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뜻을 따를 수 있는 결단과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사건의 주범인 세겜은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했습니다. 하지만 디나의 미모에 반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강간하고 보낸 후에 아버지 하몰에게 디나와 결혼하겠다고 아버지 하몰과 함께 야곱과 그의 가족을 찾아가 결혼을 요청합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타협을 제안합니다. 디나를 신부로 데려오는데 치루어야 할 값을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치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부족들과 함께 통혼하고 함께 살면 이 땅의 당신의 땅이 되지 않겠냐고 이 땅에서 살아가자가고 제안합니다.

사실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이 보여야 태도는 세겜을 책망하고, 강간한 죄에 대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되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겜은 디나를 강간하는 끔찍한 죄를 저질렀지만, 그의 아버지 하몰은 이를 혼수와 예물은 원하는 대로 다 주겠다며 돈과 조건으로 무마하려 했습니다. 죄를 다른 것으로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겜 성읍의 추장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가족을 찾아와 통혼과 결합의 제안은 단순한 ‘사죄와 보상’을 넘어 믿는 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세상의 전형적인 영적 유혹인 것입니다.

믿는 자는 죄와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변명해서도 안됩니다. 죄를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용서함을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시어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를 삼으시려는 것은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몰과 세겜은 9-10절에 “우리 사이에 서로 통혼할 것을 제의합니다. 따님들을 우리 쪽으로 시집보내어 주시고, 우리의 딸들도 며느리로 데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섞여서, 여기에서 같이 살기를 바랍니다. 땅이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리를 잡고, 여기에서 장사도 하고, 여기에서 재산을 늘리십시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타협과 혼합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좋아보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사단은 당장 눈앞의 갈등을 해결해 주는 평화처럼 보이는, 이익이 될 것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과 어긋나는 세상의 유혹과 타협을 제시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룩한 경계를 지키는 분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하몰과 세겜의 제안에 디나의 오빠들은 복수하기 위해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다른 것이 아닌 “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신앙적인 조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복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 후에 내용을 보면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 고통 속에 움직이지 못할 때 칼을 들고 그 성에 들어가 살해하는 끔직한 복수를 벌입니다.

놀랍게도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표시인 할례를 복수의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l거룩한 것을 자신들의 분노를 위해, 복수하기 위해 이용한 것입니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악한 죄인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인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편한대로 해석하고,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신앙을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내가 하는 비난과 정죄, 분노하며 말하는 말과 행동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상대방을 위해여 하는 것이라고 정당화 합니다. “저 사람은 그런 비난의 말을 들어야 마땅해. 내 분노는 의로운 분노야”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야고보서 1:20절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입니다. 억울함도 맡기고, 상처도 맡기고, 심판도 맡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최종적인 재판장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가장 억울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조롱당하시고, 버림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2:23절에 “그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이에게 다 맡기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 대해, 그 일에 대해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안타깝고 어두운 사건입니다. 디나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야곱은 침묵했습니다. 세겜은 욕망대로 행동했습니다. 오빠들은 분노함으로 폭력으로, 살인으로 복수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며 상처를 만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분노하고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말씀 속에서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세상의 죄악에 무감각해지지 마십시오. 세상과 동화되지 않도록 거룩함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 죄를 침묵으로 덮거나 무마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함과 용서함을 구해야 합니다. 셋째, 분노 대신 하나님께 정의를 맡겨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분노하고 흔들릴 때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를 아시는 분입니다.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완전한 정의를 이루실 왕이십니다. 오늘도 그 주님을 붙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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