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느헤미야 8:1-3

1. 모든 백성이 한꺼번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그들은 학자 에스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라고 청하였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 제사장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나왔다. 거기에는,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사람은 모두 나와 있었다.
3. 그는 수문 앞 광장에서,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새벽부터 정오까지, 큰소리로 율법책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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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보면 느헤미야가 모든 백성들을 일곱째 날 초 하루 즉 7월1일에 수문 앞 광장에 모이게 합니다. 7월1일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나팔절 절기입니다. 레위기 23: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날을 안식일로 삼을지니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곧 성회라.” 나팔절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 아니기에 이 시간에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느헤미야는 나팔절에 예루살렘 백성들 모두를 광야에 모이게 합니다. 오랫동안 황폐되고 무너졌던 성벽을 함께 힘을 다해 재건했고 완성했습니다. 지난 100여년 동안 그들 모두가 오랜 세월 동안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성전이 완공 되었고 더 나아가 무너져 내린 성벽도 다 복원되어 처음 맞이하는 새해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고 축제를 벌여야 할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새해 첫날 모이게 한 이유는 학사요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율법책을 가지고 와달라고 요청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왜 예루살렘 성벽을 다 재건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모든 백성들에게 읽어 주고 백성들은 모두 율법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까? 그 이유는 아무리 예루살렘의 성벽을 다 지었다 한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하면 다시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을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알아 지켜야 무너지지 않고 든든히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가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셨던 율법의 말씀을 읽었을 때 본문을 보면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자들이 새벽부터 정오까지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알아들을 만한 자라는 의미는 아마도 어린아이들을 포함해서 노인들까지 모두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광장에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약 6시간 정도를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모습을 그려보면 수만명의 유대 백성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재건한 성벽에 둘러싸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이제는 말씀을 통한 영혼의 성벽, 영적인 성벽을 재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겉모습이 화려하고, 든든한 성벽을 쌓아 올린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성벽을 쌓아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는 일에 소홀하면 어떠한 사람, 어떠한 교회, 어떠한 관계와 공동체도 사단의 공격에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영적인 원리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성벽 재건을 마무리한 후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지키는 영적인 성벽 재건을 위해서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그들이 지켜야 할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다시 보면 에스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알아들을 만한 회중이란 어린이도 포함되고 노인들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에 불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과 줄 수 있는 복이 말씀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삶을 지켜 주고, 마음을 지켜 주고, 생각을 지켜 주는 영적 성벽이 되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백성은 모두 율법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심혈을 기울여서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온 몸과 마음으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려는 자세로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영적인 배고픔의 자세로, 즉 가난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아모스 8:11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감사하게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축복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홍수 속에 말씀의 기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려는 ‘귀를 기울이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고, 설교 말씀은 수없이 듣는데 여전히 영혼이 배고픕니다. 영적인 기근으로 영혼이 메말라 기쁨, 사랑, 감사가 말라서 원망과 불평과 미움과 비난으로 가득한 불행하고 메마른 삶을 삽니다. 비극이고 안타까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영혼이 배부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와 넉넉함이 있습니다. 사단의 어떤 공격에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얻습니다. 말씀을 사모함이 우리를 지키고 승리케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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