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 21:1-15

1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가 나타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4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8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 채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백 자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9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11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14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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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람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까? 그것은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하며 사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할 수 없다 라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른 신앙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다” 말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우리 스스로 교만하게 합니다. “내가 잘났다. 내 생각, 내 판단이 맞다. 내가 했다. 나 때문에 잘된 것이다. 내 뜻대로만 다들 따르면 잘 될거다” 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실패를 하고 생각지 않는 어려움을 만나서 고민하고 힘들어 할 때 나의 미련함, 연약함과 부족함, 교만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의 날을 인생의 중간 중간에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과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우리가 교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주님께서 물위로 걸어오실 때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놀라운 믿음의 요청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라” 라고 답하셨고 베드로는 배에서 뛰어 내려 예수님처럼 물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가 물에 빠졌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놀라운 신앙의 고백을 했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이 받을 고난과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시자 “그러시면 안됩니다” 라고 항의 함으로 “사단아 물러가라”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을 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단언했지만 바로 그날 밤에 주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조금 잘 되면 교만해지고 조금 어려움이 오면 넘어지고 낙담합니다. 가장 귀한 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시고 위로해 주시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축복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가 달려갈 곳과 우리가 찾아갈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아원 아이들이 가장 부러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옷입니까? 맛진 음식입니까? 장난감입니까? 고아원 아이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내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부모님의 손입니다. 내가 넘어질 때 잡아 주는 손, 내가 길을 갈 때 함께 동행하며 잡아 주는 손, 나를 잡아 주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나의 손을 늘 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손을 잡고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혼자 끝까지 잘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끝까지 넘어지지 않고 신앙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실수를 하고 넘어지고 모세도 실수를 하고 넘어지고 여호수아도 실수하고 넘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온전히 신앙의 삶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약속하신 “너와 함께 하겠다” 라고 하신 도우시는 하나님,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 걸으라고 다가와 손 내미신 하나님, 실수하고, 잘못해도 다시 기회를 주시고, 다듬어지고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기다리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의 삶이 온전하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뭔가를 잘 하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의 약함을 아십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자녀를 삼으시고 우리가 쓰임 받을 수 있는 일군으로 성장시켜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일군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를 충성 되이 여기셨기 때문에, 우리가 충성했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니라 충성될 것이라고 믿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일군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지금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가능성이 없어 보일지라도, 우리가 여러 가지 실수와 잘못을 범할 것을 알라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일곱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소망을 잃고 베드로를 따라서 다시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려고 해도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를 만들기 위해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사람 낚는 주님의 사명을 위한 일이 아닌 예전의 고기 잡는 일을 하고 있으니 잡힐리가 없습니다. 일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몰라 봤습니다. 고기 잡는데 신경이 가 있으니 예수님을 볼 눈이 없는 것입니다. 실망하고 좌절한 상황이니 예수님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만 생각하고 있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대로 그물을 오른편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이 잡혀서 153마리가 잡혔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릴적 사용했던 모나미 볼펜에 153이라고 쓰여진 숫자가 바로 이 숫자라고 합니다. 고기를 잡은 후에야 예수님인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바다에 뛰어 내려서 예수님께로 오고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 곁으로 모입니다.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것들이 있었습니다. 본문을 보니까 숯불이 있고 생선이 있고 떡이 있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무엇을 준비하고 기다렸겠습니까? 자신을 버리고 도망한 제자들, 자기를 모른다고 부인한 제자를 책망하고 혼을 내줄 회초리나 몽둥이가 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베드로 너는 나를 세번 부인했지? 부인한것만 아니라 저주까지 했지?” “너희는 내가 십자가에 달릴 때 한놈도 자리를 지키지 않고 도망했지” 너희들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내가 부활한다고 몇번이나 말하지 않았는냐? 그런데 기껏 한다는 것이 고기잡으러 왔냐” 라고 한대씩 쥐어 박았을텐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지치도록 한 마리 고기도 못 잡고 그물질을 한 제자들에게 책망과 호통이 아닌 따스한 떡과 조반구이를 준비하셔서 먹으라고 주셨습니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난 배반자들이었지만 책망하지 않으셨고 허물을 들춰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책망하시고 창피를 주시는 분이 아니시고 스스로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우리를 찾아와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반대입니다. 좋을 때는 가까이 다가오다가 어려워지면 떠납니다. 내 마음에 들게 하면 좋아하다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 한가지나 실수를 하면 돌아섭니다. 세상에는 내가 약해지면 다 떠납니다. 내가 실패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팽켜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키시는 주님이십니다. 베드로를 향하여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질문하십니다. 비난하고 정죄하고, 비꼬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다시 일으키시고 다시 힘을 주시기 위한 질문이셨습니다. 이 질문은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질문이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넘어지고, 실수하고, 불순종함으로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낙담하고 포기하고자 할 때 다시 기회를 주시고 일으켜 주시는 주님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다시 힘을 얻어 대답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베드로의 대답이 사실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대답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있어서 마음처럼 행하지 못하는 죄송한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 마음과 대답을 아시고 “내 양을 먹이라” 라고 사명을 주시는 주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힘과 용기를 얻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먼저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을 찾아 바닷가에 오셔서 서 신 것처럼 주님은 내 삶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오셔서 다시 일으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사명을 주시어 사명자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못났지만 우리가 부족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기도의 줄을 놓지 말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놓지 않고 다시 힘 있게 일어나 주님의 가라하신 그 길을 힘차게 함께 달려 나가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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