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1:22-32

22 라반은, 야곱이 도망한 지 사흘 만에야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23 라반은 친족을 이끌고 이렛길을 쫓아가서, 길르앗 산간지방에서 야곱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24 그 날 밤에 아람 사람 라반이 꿈을 꾸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25 라반이 야곱을 따라잡았을 때에, 야곱이 길르앗 산간지방에다 이미 장막을 쳐 놓았으므로, 라반도 자기 친족과 함께 거기에 장막을 쳤다.

26 라반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나를 속이고, 나의 딸들을 전쟁 포로 잡아가듯 하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27 어찌하여 자네는 나를 속이고, 이렇게 몰래 도망쳐 나오는가? 어찌하여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가? 자네가 간다고 말하였으면, 북과 수금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며, 자네를 기쁘게 떠나 보내지 않았겠는가?

28 자네는, 내가 나의 손자 손녀들에게 입을 맞출 기회도 주지 않고, 딸들과 석별의 정을 나눌 시간도 주지 않았네. 자네가 한 일이 어리석기 짝이 없네.

29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자네를 얼마든지 해칠 수 있네. 그러나 어젯밤 꿈에 자네 조상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에게 경고하시기를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셨다네.

30 자네가 아버지의 집이 그리워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찌하여 나의 수호신상들을 훔쳤는가?”

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였다. “장인 어른께서 저의 처들을 강제로 빼앗으실까 보아 두려웠습니다.

32 그러나 장인 어른 댁 수호신상들을 훔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죽이셔도 좋습니다. 장인 어른의 물건 가운데서 무엇이든 하나라도 저에게 있는지, 우리의 친족들이 보는 앞에서 찾아보시고, 있거든 가져 가십시오.” 야곱은, 라헬이 그 수호신상들을 훔쳤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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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0-31장은 라반과 야곱 사이에 속고 속이는 사건들을 우리들에게 보여 줍니다. 속고 속이는 이유는 탐욕 때문입니다. 라반과 야곱 삼촌과 조카의 관계입니다. 더 나아가 장인과 사위의 관계입니다. 가족입니다. 그런데 라반에게 탐욕이 있었습니다. 그 탐욕으로 인해 조카이며 사위가 된 야곱을 돕고, 배려해 주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부를 쌓는 하나의 도구로 보았습니다. 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딸을 사랑하는 야곱을 보고 야곱으로 하여금 14년간 무보수로 일하게 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또한 10번이나 야곱의 품삯을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일방적으로 속이고 바꾸었습니다. 그러한 라반을 야곱도 믿고 의지하는 삼촌과 장인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착취한 이기주의자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야곱도 어떻게 하든 라반의 가축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썼습니다. 그래서 많은 가축을 자신의 몫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마음과 관계로 두 사람이 한 집안에 살았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늘 두 사람의 사이에 긴장과 눈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야곱이 계획했던 대로 많은 검은 것, 점 있는 것, 줄무니 가축들이 자신의 몫으로 많이 생기자 결국 20년이나 같이 살았던 장인에게 인사도 없이 처자식과 재산을 이끌고 몰래 도망합니다. 그리고 라반은 야곱이 도망간 것을 알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좇아가는 사건이 본문의 사건입니다.

라반이 야곱이 도망한 것을 사흘이나 지난 뒤에야 압니다. 삼일이나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라반은 자신이 야곱에게 잘못했던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야곱을 괘씸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분노로 가득차서 일꾼들과 자기 친척들을 데리고 야곱을 잡으러 갑니다.

일주일을 쫓아가서 바로 야곱을 잡을 수 있는 그날 밤에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경고하십니다. “그날 밤에 아람사람 라반이 꿈을 꾸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라반도 할 말이 많고 야곱도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 속고 속이는 관계에서는 서로 할 말이 많습니다. 어떤 말입니까?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잘못했고, 어떤 상처를 주었고,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에 대한 말입니다. 자기의 실수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과 실수와 잘못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피해 받은 것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격려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비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라반에게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라고 하신 겁니까? 야곱이 아무런 잘못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하신 말씀은 야곱이 실수를 많이 했고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반 네가 할 일이 아니라 내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했을 때, 위기에 부딪혔을 때 우리가 잘해서, 믿음이 좋아서, 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위기를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날 밤에 라반에게 나타나 자신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경고하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많은 사고와 어려움과 문제 속에 먼저 개입하셔서 막아 주시고 보호해 주신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다 알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르는 때에도 막아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잘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하기 때문에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는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사랑은 상대방이 나에게 해준만큼 하는 사랑입니다. “네가 나에게 잘 하니까. 내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니까”조건이 붙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한 만큼 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 받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어 주시는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라반에게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라고 하시며 야곱을 방어해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야곱의 잘 잘못을 따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의 죄성 가운데 한 가지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추고, 알리고, 따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자신은 완전한 의인처럼 판단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 아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의 마음의 동기를 다 알지 못합니다. 내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판단은 주관적이고 편파적입니다.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아시고 올바르게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고 덮어주는 것입니다. 따지는 사람, 들춰내는 사람, 험담하는 사람, 말을 퍼트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로 덮어주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라반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라반은 그것을 참지 못하고 따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그러할 때가 사실 얼마나 많습니까? 26절입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나를 속이고, 나의 딸들을 전쟁포로 잡아 가듯하니, 어찌 이럴수가 있는가?”

언뜻 보면 라반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틀린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자기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진실을 왜곡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다. 라반의 입장에서는 야곱이 강도처럼 자기 딸들을 칼로 위협해서 잡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야곱이 칼로 위협해서 강제로 끌로 간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야곱에게 동의해서 자발적으로 동행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신들을 팔았고 자신들의 몫을 다 가져갔다고 아버지를 떠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자기 안에서만,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처럼 자기감정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주관적으로 그렇게 해석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라반은 27-28절에 이렇게 또 말합니다. “어찌하여 자네는 나를 속이고, 이렇게 몰래 도망쳐 나오는가? 어찌하여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가? 자네가 간다고 말하였으면, 북과 수금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며, 자네를 기쁘게 떠나보내지 않았겠는가? 자네는, 내가 나의 손자 손녀들에게 입을 맞출 기회도 주지 않고, 딸들과 석별의 정을 나눌 시간도 주지 않았네. 자네가 한일이 어리석기 짝이 없네” 야곱이 떠나겠다고 라반에게 말했다면 라반이 정말 그렇게 기쁘게 보냈을까요? 보냈으리라는 말은 자기 생각입니다. 라반은 자기 자신을 미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성은 언제나 자기의 행위를 미화시킵니다. 물론 라반은 자기의 딸들과 손자들에게 입 맞추고 작별인사를 하고 보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라반은 그런 마음과 함께 미화하는 말을 섞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도망친 일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라반에게는 옳게 생각되는 말이지만 야곱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합니다. 나의 해석이 옳으니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라반의 입장에서 보면 야곱이 괘씸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라반이 더 괘씸한 것입니다. 피장파장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속이고 속이는 관계이지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라반과 야곱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적인 모습을 하나님의 빛 가운데 바로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늘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착각, 내가 늘 당한 사람이요, 내가 속임을 당하고, 피해를 입은 자라고 생각하는 착각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속임을 당한 자가 아니라 속인 자요, 피해를 입은 것보다 피해를 더 많이 준 사람이 아닙니까? 내가 깨닫지 못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고 힘들게 하는지 잘 모를 때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바로 보고 깨달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앞에 서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셔야, 깨닫게 하셔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내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변해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더 이상 나는 피해자고 다른 사람이 가해자라고 비난하고 탓하는 모습을 버리기 바랍니다. 나를 바로 볼 수 있는 영적인 깨달음을 가지고 다투고 싸우고, 원망하는 인생이 아닌 억울함이나 당함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 인내와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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