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1:43-55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였다. “이 여자들은 나의 딸이요, 이 아이들은 다 나의 손자 손녀요, 이 가축 떼도 다 내 것일세. 자네의 눈 앞에 있는 것이 모두 내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 있는 나의 딸들과 그들이 낳은 나의 손자 손녀를, 이제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44 이리 와서, 자네와 나 사이에 언약을 세우고, 그 언약이 우리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하세.”
45 그래서 야곱이 돌을 가져 와서 그것으로 기둥을 세우고,
46 또 친족들에게도 돌을 모으게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 와서 돌무더기를 만들고, 그 돌무더기 옆에서 잔치를 벌이고, 함께 먹었다.
47 라반은 그 돌무더기를 여갈사하두다라고 하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하였다.
48 라반이 말하였다. “이 돌무더기가 오늘 자네와 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거일세.” 갈르엣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49 이 돌무더기를 달리 미스바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라반이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에, 주님께서 자네와 나를 감시하시기 바라네” 하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50 “자네가 나의 딸들을 박대하거나, 나의 딸들을 두고서 달리 아내들을 얻으면, 자네와 나 사이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자네와 나 사이에 증인으로 계시다는 것을 명심하게.”
51 라반은 야곱에게 또 다짐하였다. “이 돌무더기를 보게. 그리고 내가 자네와 나 사이에다 세운 이 돌기둥을 보게.
52 이 돌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돌기둥이 증거가 될 것이네. 내가 이 돌무더기를 넘어 자네 쪽으로 가서 자네를 치지 않을 것이니, 자네도 또한 이 돌무더기와 이 돌기둥을 넘어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 나를 치지 말게.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 우리 사이를 판가름하여 주시기를 바라네.” 그러자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을 지켜 주신 ‘두려운 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54 야곱은 거기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친족들을 식탁에 초대하였다. 그들은 산에서 제사 음식을 함께 먹고, 거기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55 라반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 손자 손녀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에게 축복하고, 길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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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0장부터 나오는 라반과 야곱은 삼촌과 조카의 관계이고 장인과 사위 관계였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고, 힘과 기쁨이 되어야 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로 살아왔습니다. 분명 두 사람은 앞에서는 친한 척 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보면 겉으로는 만나면 반가운 척, 친한 척,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서로 갈등하고, 미워하고, 힘들어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험담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이런 관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방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잘못, 실수, 안좋은 점, 해서는 안되는 행동, 나에게 상처준 일들, 비난할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관계가 된 것의 모든 이유와 책임이 다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야곱과 라반이 그런 관계, 그러한 마음으로 20년간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듣자 야곱은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라반이 모르게 아내들과 자녀들, 그리고 모든 재산을 가지고 라반의 집에서 도망합니다. 도망했다는 것을 알고 라반은 일주일간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추적해 갔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공격하려고 마음먹지만 야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속에 나타나셔서 라반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야곱이 아무런 잘못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기에, 사랑하시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야곱이 라반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던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신 것입니다.
라반은 도망한 야곱에 대해 분노했고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경고하시는 말씀 때문에 정신을 차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인간적인 감정을 그대로 폭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4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였다. “이 여자들은 나의 딸이요, 이 아이들은 다 나의 손자 손녀요, 이 가축 떼도 다 내 것일세. 자네의 눈 앞에 있는 것이 모두 내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 있는 나의 딸들과 그들이 낳은 나의 손자 손녀를, 이제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라반이 흥분한 감정을 가라앉자 상황을 제대로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해서는 안되는 말,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분노와 섭섭함, 화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할 때입니다. 속된 말로 열받을 때, 뚜껑이 열릴 때 옳고 그름, 지혜로운 결정을 하지 못합니다. 라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망쳤다는 소리를 듣고 열이 받쳐서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죽기 살기로 좇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라반은 정신을 차립니다. 감정이 가라앉습니다.
그러자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자신이 적대시해야 할, 미워해야 할, 가만두어서는 안 될 싸워야 할 상대가 아니라 사위이며 가족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43절에 “이 여자들은 나의 딸이요, 이 아이들은 다 나의 손자 손녀요, 이 가축 떼도 다 내 것일세. 자네의 눈 앞에 있는 것이 모두 내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 있는 나의 딸들과 그들이 낳은 나의 손자 손녀를, 이제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이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눈으로 보면 우리가 싸우고 있는 사람, 내가 대적하고 있는 대상들이 다 사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배척하는 관계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라고 만나게 하신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서로 사랑하라”“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가 그렇게 원수라고 생각하는 대상, 미워하는 사람이 바로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라반은 바로 그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즉 자기의 딸과 손자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정신을 차립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인죄에 해당하는 미워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제대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라반은 더 이상 라반과 싸우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화해를 제안합니다. 44절 “이리 와서, 자네와 나 사이에 언약을 세우고, 그 언약이 우리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하세”
야곱이 라반의 제안에 바로 화답합니다. 야곱도 삼촌이요 장인되는 라반과 껄끄러운 관계, 갈등의 관계를 풀기를 원했습니다. 도망치듯 떠나온 것이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라반의 제안에 야곱이 바로 받아들입니다. 45-46절 “그래서 야곱이 돌을 가져 와서 그것으로 기둥을 세우고, 또 친족들에게도 돌을 모으게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 와서 돌무더기를 만들고, 그 돌무더기 옆에서 잔치를 벌이고, 함께 먹었다”원수 같았고, 도망하고 쫓아가고, 서로 속였다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던 관계가 함께 잔치를 하며 함께 먹는 화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 구절에서 봅니다.
이 구절 속에 귀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돌기둥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돌기둥이 처음이 아닌 두 번째 세운 돌기둥입니다. 야곱이 첫 번째 세운 돌기둥은 창세기 28장에 나옵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기도를 받고 형의 분노를 피해 집을 떠나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쳐 올 때 두려움과 근심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광야에서 홀로 돌베개를 베고 잘 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를 보호하겠다. 너를 축복하여 고향으로 안전하게 돌아오도록 하겠다”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뵙고 약속의 말씀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 돌기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기름을 붓고 예배를 드리며 서원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돌기둥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됨의 돌기둥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라반과 화해하고 난 후에 세운 두 번째 돌기둥은 인간끼리의 화해의 언약으로 세워진 돌기둥입니다. 우리에게 이 두 개의 돌기둥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화해의 돌기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세워지는 화해의 돌기둥입니다. 47절을 보십시오. “라반은 그 돌무더기를 여갈사하두다라고 하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하였다” 48절 “라반이 말하였다. 이 돌무더기가 오늘 자네와 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거일세”
라반과 야곱 사이에 불신하고 반목했던 관계가 해결되었다는 언약의 증거로 세운 돌기둥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화목의 돌기둥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관계를 막는 벽을 쌓는 자가 아니라 화목의 돌기둥을 세우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화해의 돌무더기는 라반의 강요나 명령이 아닌 부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라반은 강요가 아닌 부탁을 하였습니다. 44절 “이리 와서, 자네와 나 사이에 언약을 세우고, 그 언약이 우리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하세”화해하자는, 화해의 돌기둥을 쌓자고 먼저 부드럽게 제안하고 부탁했을 때 야곱의 마음이 녹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삶으로 경험하지 않습니까? 누군가와 어려워졌을 때, 어떤 일로 마음이 닫혀 있을 때 상대방이 먼저 부드럽게, 겸손하게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할 때 그 손을 뿌리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화해하고 싶고 해결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감정이 아직 식지 않아서, 어떠할 때는 별것 아닌 자존심 때문에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지만 화해하고픈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습니까?
라반이 돌무더기를 쌓으며 화해하자고 부드럽게 부탁하며 손을 내밀었을 때 드디어 야곱의 마음이 녹습니다. 그래서 바로 함께 온 가족을 동원해서 돌기둥을 함께 쌓아 올립니다. 그렇습니다. 부탁을 해야 사람의 마음이 녹지 분노함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상대를 꺾으려고 해서는 화해되지 않습니다. 똑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말 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화해하고 화목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부드럽고 부탁하며 예의를 갖추고 말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지만 교만하게 대하면 마음을 닫습니다.
라반은 그 동안 윗사람으로서 교만하게 명령하고 강요했습니다. 자신이 편한대로, 자기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야곱은 상처를 입고 마음을 닫고 벽을 쌓아 갔습니다. 그러나 라반이 바뀌자 야곱은 마음을 풀기 시작합니다. 화해의 돌기둥을 세우고 그 자리에서 제사, 즉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형제들을 불러 모으고 잔치를 벌입니다. 음식을 함께 먹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밤을 보냅니다.
서로 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젯밤까지도 죽일 듯이 싸우던 라반과 야곱의 집안 사람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소망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러한 아름다운 화해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끼리의 관계에서는 화해는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평화와 화해의 조약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개입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셔야 합니다. 화해의 마음을 주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상대방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원수가 아닌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보일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기름부음, 성령의 충만함, 은혜를 체험할 때 감정이 아닌, 분노가 아닌, 상처와 미움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54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거기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친족들을 식탁에 초대하였다. 그들은 산에서 제사 음식을 함께 먹고, 거기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떡을 나누고 밤을 샜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불신의 벽과 미움이 무너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봅니다. 야곱이 도망가던 들판 한 가운데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55절을 보십시오 “ 라반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 손자 손녀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에게 축복하고, 길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전날 밤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입니다. 라반이 밤새도록 야곱의 가족들과 하께 음식을 나누고 회포를 풀고 딸을 부탁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며 헤어집니다. 아마도 라반과 야곱의 눈에 눈물이 고였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부모, 부부, 직장에서 갈등이 깨어지기를 원합니다. 관계속에 불신과 미움과 상처, 원망의 벽을 쌓아 가는 자가 아니라 사랑과 화해의 기둥이 든든히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손해를 보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손해를 보지 않고는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셨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에도 예수님의 모습으로 화해의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