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여호수아 17:14-15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가 큰 무리가 되었는데, 어른께서는 왜 우리에게, 한 번만 제비를 뽑아서 한 몫만 유산으로 가지게 하십니까?”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큰 무리이어서 에브라임 산간지방이 당신들에게 작다면, 거기에서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인 삼림지대로 올라가서 그 곳을 개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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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사건은 가나안 땅을 정복해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동안 많은 가나안 땅을 정복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정복해야 할 많은 가나안 땅이 남아 있는 상황 속에서 리더인 여호수아가 각 지파들에게 정복한 땅과 그리고 정복할 땅을 지정해서 나누어 줍니다. 그런데 요셉 자손인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땅을 더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17: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가 큰 무리가 되었는데 어른께서는 왜 우리에게 한번만 제비를 뽑아서 한 몫만 유산으로 가지게 하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글로 쓰여져 있기에 잘 분별이 되지 않지만 지금 요셉 자손인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한 말은 불평하며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각 지파별로 제비를 뽑게 해서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가 왜 우리는 두 지파인데 한번만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들으면 타당하고 정당한 요구 같습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12지파가 된 야곱의 아들들이 아닙니다. 11번째 아들이었던 요셉의 아들들인 야곱의 손자들입니다. 그런데 요셉을 통해 야곱의 가족들이 기근에서 구원을 받아 이집트에서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 야곱이 죽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여서 제사장 지파로 선택받은 레위 지파 대신에 한 지파씩으로 땅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므낫세 지파의 반은 여리고 성을 정복하기 전에 이미 요단강 동쪽편의 넓은 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의 땅과 나머지 므낫세 지파 반의 땅을 하나로 제비를 뽑아 에브라임은 요단강 서편에 유다 지파 다음으로 넓고 비옥한 땅을 주었고 므낫세 반 지파도 에브라임 지파 위족에 꽤 넓은 지역을 분배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땅이 부족하고 불공평 하다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기들의 지파의 수가 많기 때문에 더 넓은 땅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인구를 따져보면 유다지파나 잇사갈, 단 지파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요셉 지파들 보다 더 작은 땅을 분배 받았지만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많은 땅을 받은 요셉 자손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질된 신앙, 참된 믿음이 세워지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신앙이 변질되고 성숙하지 않으면 불평과 불만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변화된 신앙, 성숙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변질된 신앙의 모습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땅을 나누었는데 더 달라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보다 내 이익과 내 원함이 앞서는 것입니다. 신앙이 변질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있는 것이 아닌 없는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약속받아 이집트에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고 홍해를 건너 왔던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망했습니까? 원망과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먹을 수 있는 만나를 내려 주시고, 광야 그 메마른 땅에서 반석에서 생수를 내서 마시게 하셨습니다.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햇빛을 막아 주시고 불기둥으로 추운 밤을 따스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두달 만나를 먹더니 민수기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나님께서 매일 만나로 먹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하챦은 음식이라고 말합니다. 이 음식 싫다, 싫증난다 라고 말합니다. 변질된 신앙의 태도입니다. 주신 것 감사하지 않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 주셨는데도 불평합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신앙, 변화한 신앙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필요한 것, 부족한 것 있으면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의 말과 태도가 아닙니다. 부족함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구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원함을 주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내게 주신 것을 돌아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열왕기하 4장을 보면 남편을 잃은 과부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 자신의 남편이 빚이 많았는데 죽어서 갚지 못해 자신의 두 아들이 노예로 팔려 갈 상황이라고 애걸합니다. 그때 묻는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과부가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I have nothing”

믿음이 없는 자, 신앙이 변질되고 떨어진 사람들은 나는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없는 것만을 봅니다. 돈이 없다, 일할 사람이 없다, 해 본적이 없다. 시간이 없다, 이게 없다, 저게 없다. 그러나 신앙이 성장하며 성숙한 믿음이 있는 자, 변화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가진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역사하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5천명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너희가 주라 라고 하시자 다른 제자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먹일 만한 돈도 떡도 없습니다” 라고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고 여기에 있습니다 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작지만 있다고 드린 다섯 개의 떡과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12광주리가 남게 하시는 역사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실 때도 모세는 “내가 가진 것이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질문하십니까?“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때 모세가 “제 손에 마른 지팡이 하나가 있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있다고 한 그 지팡이로 10가지의 기적과 능력을 베푸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게 하시는 능력을 베푸십니다.

변화된 신앙, 살아있는 신앙은 있는 것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주신 것에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하나님께 들리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기에 있는 것을 감사하고 그 있는 것, 부족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께 자원하여 섬기고 헌신하겠다는 자세입니다.

신앙은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지 없는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내가 없는 것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원망하게 되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게 주신 것을 바라보고 감사하며 그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섬기면 소망과 능력과 감사와 기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함으로 믿음의 눈으로 보는 신앙, 원망과 불평의 변질된 신앙이 아니라 주신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리고 기도함으로 놀라운 축복의 통로가 되는 신앙으로 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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