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14-24

14 보리를 거두어들일 때에, 르우벤이 들에 나갔다가, 자귀나무를 발견하여,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다 주니, 라헬이 레아에게 말하였다. “언니,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조금만 나눠 줘요.”

15 레아가 라헬에게 말하였다. “내 남편을 차지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냐? 그래서 내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까지 가져 가려는 것이냐?” 라헬이 말하였다. “좋아요. 그럼, 언니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나에게 주어요. 그 대신에 오늘 밤에는 그이가 언니하고 함께 자도록 하지요.”

16 그 날 저녁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올 때에, 레아가 그를 맞으러 나가서 말하였다. “당신은 오늘 밤에는 나의 방으로 드셔야 해요. 나의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라헬에게 주고, 그 대신에 당신이 나의 방으로 드시게 하기로 했어요.” 그 날 밤에 야곱은 레아와 함께 잤다.

17 하나님이 레아의 호소를 들어 주셔서, 레아가 임신을 하였고, 야곱과의 사이에서 다섯 번째 아들을 낳았다.

18 레아는 “내가 나의 몸종을 나의 남편에게 준 값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구나”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잇사갈이라고 하였다.

19 레아가 다시 임신을 하여서, 야곱과의 사이에 여섯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

20 레아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셨구나. 내가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으니, 이제부터는 나의 남편이 나에게 잘 해주겠지”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스불론이라고 하였다.

21 얼마 뒤에 레아가 딸을 낳고, 그 아이 이름을 디나라고 하였다.

22 하나님은 라헬도 기억하셨다. 하나님이 라헬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

23 그가 임신을 하여서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벗겨 주셨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24 라헬은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또 다른 아들 하나를 더 주시면 좋겠다” 하는 뜻으로, 그 아이 이름을 요셉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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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에게는 두 명의 아내, 레아 라헬, 그리고 두명의 첩 빌하, 실바가 있었습니다. 레아는 6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블론입니다. 빌하는 2명 단과 납달리, 실바는 2명, 갓과 아셀. 이 세 여인은 별 어려움 없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아무리 기다리며 노력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라헬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 집안에 다른 세 부인은 아들들을 낳고 아들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알지만 아이들이 재롱을 피우고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매일 지켜보는 라헬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라헬은 자신이 인간적으로 아기를 갖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도 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언니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합환채를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합환채라는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그 당시 불임 치료제로 알려진 귀한 식물입니다. 라헬은 그 소식을 듣고 남편을 언니 레아와 동침시키는 대가로 그 약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언니 레아는 다시 두 아들을 임신하게 되었는데 정작 합환채를 얻은 라헬은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라헬이 할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노력이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라헬이 아무리 노력해도 생명을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시면 열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닫으셨는데 내가 아무리 열라고 노력해도 그 노력은 허사입니다. 레아가 아들을 낳을 때도 보면 그 태를 여신 분이 누구셨습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쉽게 생각합니다. 자식이야 결혼하면 자연히 생기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주권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라헬의 태를 닫으신 것일까요? 성경에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이것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황을 볼 때 하나님께서 라헬의 태를 막으신 것은 라헬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모습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니 레아가 아들을 네 명이나 낳자 라헬은 창세기 30:1절에 “그 언니 레아를 투기하여,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라고 남편 야곱에게 자식을 낳게 하라고 바가지를 긁습니다. 자식을 낳는 것을 남편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라헬은 결국 아기를 갖지 못하자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기를 가지려고 합니다. 여종 빌하를 남편에게 들여보내 아들을 얻으려고 인간적인 방법을 씁니다. 30:3절을 보면 “라헬이 말하였다. “나에게 몸종 빌하가 있어요. 빌하와 동침하셔요. 그가 아이를 낳아서 나에게 안겨 주면, 빌하의 몸을 빌려서 나도 당신의 집안을 이어나가겠어요”하나님께서 빌하에게 두 아들을 허락합니다. 비록 몸 종 빌하를 통해 씨받이처럼 얻은 아들이지만 그게 본인 아들입니까?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했을 때 몸 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하갈이 주인 사라를 무시하지 않았습니까? 마찬가지로 몸 종 빌하를 통해서 얻은 아들이었던 단과 납달리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빌하의 눈치를 보았을 것입니다. 마음에 만족, 기쁨, 행복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지내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다 해도, 내가 나름대로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드디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자식을 달라고 호소하며 간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럴 때, 그러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드디어 라헬의 태를 열어 주십니다. 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라헬도 기억하셨다. 하나님이 라헬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시고 라는 말은 그 동안 라헬을 잊고 계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라헬이 낮아질 때를,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다리는 시간을 거절로 해석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기다림일 뿐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했는데 그 기도의 제목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분은 쉽게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어떤 분은 상처를 받습니다. 라헬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라헬이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년이 지났음에도 아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라헬에게는 좌절하는 마음, 포기하는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응답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의 기도를 저 버리거나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가 안타깝게 몸부림치고 아파할 때 기도를 일찍 들어주시지 않고 시간을 끄시는 이유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과 수단과 방법을 내어 놓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실 때가 많습니다. 인간적인 기준과 판단으로 볼 때 “이제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가능하다. 끝났다” 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케 하심으로 그 일은 분명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것을 자신과 사람들이 깨닫게 하실 때가 많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을 만나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지 25년 만에 이삭을 낳습니다. 그때는 이미 사라의 경수가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 아이를 얻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주셨음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야곱에게 아내가 넷이나 있었습니다. 그 중 세명의 아내는 쉽게 아이를 낳았는데 유독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라헬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라헬이 어렵게 낳은 아이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시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23-24 “그가 임신을 하여서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벗겨 주셨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라헬은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또 다른 아들 하나를 더 주시면 좋겠다” 하는 뜻으로, 그 아이 이름을 요셉이라고 하였다” 드디어 라헬에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요셉입니다. 요셉이란 ‘하나님께서 부끄러움을 씻겨 주셨다” 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12 아들 중에 가장 탁월한 아들이요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보다 요셉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열두 지파 중에 요셉에게만 두 지파의 몫을 줍니다. 그래서 요셉 지파 대신에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열두지파에 들어갑니다. 그만큼 요셉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더 하시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낮아짐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더 큰 축복을 받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요셉이 그러했고 한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무엘이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까? 낮아질 때 축복을 받게 됩니다. 내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갈 때 축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라헬이 교만했을 때 물리치셨습니다. 태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그러나 겸손해졌을 때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태의 문을 열어 주셨고 귀한 아들 요셉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라헬을 볼 때 자식을 얻지 못하는 어려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하여 낮아지고 겸손해짐을 통해서 12 지파 중에 가장 위대한 지파인 요셉을 낳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헬의 고백이 위대합니다. 23절“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요셉을 낳은 라헬. 우리 또한 그러한 라헬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함을 배우고 낮아짐을 배우고 하나님 앞에 내가 부족하고 약한 자임을 인정함으로 부끄러움을 벗고 요셉을 낳은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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