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6-10

6 야곱과, 그가 거느린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베델에 이르렀다.

7 야곱이 거기에서 제단을 쌓은 뒤에, 그가 형을 피해서 떠날 때에, 베델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을 생각하고, 그 곳 이름을 엘베델이라고 하였다.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서, 베델 아래쪽 상수리나무 밑에 묻히니, 사람들이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고 하였다.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뒤에, 하나님이 그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복을 주셨다.

10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이름이 야곱이었지만,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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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야곱이 베델에 와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후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이제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창세기 32장에서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밤새 기도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또다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신 한번 야곱에게 네 이름이 이스라엘이라고 알려 주신 중요한 영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여전히 넘어지고 흔들리는 우리를 다시 세우시려는 영적인 메시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깨닫고 힘 있게 다시 일어나는 자로 서기를 원합니다.

본문 6-7절을 보면 야곱이 그의 가족들을 이끌고 벧엘에 도착합니다. 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던 중 돌베개를 베고 잠들었다가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던 은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라고 명하신 자리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여전히 하나님보다 자신의 머리를 믿고, 인간적인 방법과 계산으로 살았습니다. 특별히 창세기 34장에서는 딸 디나 사건이라는 큰 문제를 만났을 때 여전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무책임함을 보였고, 아들들의 속임수와 복수심으로 세겜 성의 모든 남자들을 살해하고 약탈해 오는 죄악을 보게 됩니다. 그 속에서도 그 일로 인해 자신에게 닥칠 재앙으로 두려워하며 비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만큼 야곱은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께서 찾아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은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닙니다. 지금 문제의 자리에서 떠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은혜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가운데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식어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 염려 속에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근심과 두려움, 원망과 탓을 하며 어찌할바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바라지 않고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다시 벧엘로 올라오라. 다시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나를 만나고, 나를 붙잡을 수 있는 자리로 돌아와 회복하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찾아 오셔서 “”벧엘로 올라가라” 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쳐 살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 오셔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모세를 찾아 오셔서는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실패한 자리에 다시 찾아오십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시기 위함이십니다. 그렇기에 근심과 걱정, 낙심과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야곱이 순종하여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할 때 10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이름이 야곱이었지만,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속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의 삶은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였고, 계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자”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개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존재를 새롭게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우리의 과거를 봅니다. 실패, 약점, 부족함, 수치스러움, 비난하고 손가락 받을 것들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우리를 보십니다. 그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사래를 사라로 바꾸셨습니다.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셨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사람이 아닌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성도, 하나님의 자녀” 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직 변화되지 않는 모습 그대로이지만 이름에 합당한 자로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의 과거 이름을 부르려 합니다. “너는 실패자다. 너는 안 변한다. 너는 형편없는 존재다. 네가 뭘 할 수 있겠냐? 너는 여전히 야곱이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너는 내가 새롭게 한 사람이다.”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이러한 부르심을 반복해서 확인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32장에서 하셨던 “너의 이름은 이제 이스라엘이다” 라고 하신 말씀을 벧엘로 올라온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반복해서 말씀하십니까? 우리는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여전히 야곱처럼 살아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거룩한 성도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여전히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갑니다. 여전히 내 생각과 뜻대로, 나 중심으로, 헛된 짓을 합니다. 두려워하고 근심하며 낙심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 약속을 받은 그 은혜의 자리로 와서 예배함으로 “너는 내 자녀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두려워하지 말이라. 기도해라.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께 맡기며 믿음으로 말씀대로 살아라”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듣고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듣는 삶입니다. 왜 예배가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왜 말씀을 계속 읽고 묵상하며 기도해야 합니까? 세상은 우리를 흔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다시 세워 주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사람이다. 너는 내가 붙든 자다. 너는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준 것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종이라는 이름을 준 것처럼 그 이름을 붙들고 사단의 영적인 공격을 이기고, 죄의 유혹과 죄성을 이기고 믿음으로 주님 뜻대로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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