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31-36
31 그들은 숫염소 한 마리를 죽이고, 요셉의 옷을 가지고 가서, 거기에 피를 묻혔다.
32 그들은 피 묻은 그 화려한 옷을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말하였다. “우리가 이 옷을 주웠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33 그가 그 옷을 알아보고서 부르짖었다. “내 아들의 옷이다! 사나운 들짐승이 그 아이를 잡아 먹었구나. 요셉은 찢겨서 죽은 것이 틀림없다.”
34 야곱은 슬픈 나머지 옷을 찢고, 베옷을 걸치고, 아들을 생각하면서, 여러 날을 울었다.
35 그의 아들딸들이 모두 나서서 그를 위로하였지만, 그는 위로받기를 마다하면서 탄식하였다. “아니다. 내가 울면서, 나의 아들이 있는 스올로 내려가겠다.” 아버지는 잃은 자식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36 그리고 미디안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요셉을 보디발이라는 사람에게 팔았다. 그는 바로의 신하로서, 경호대장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양을 치고 있는 자신들을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요셉을 죽이기로 모의하고 깊은 웅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은 20개를 받고 팔아 넘깁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을 속이기 위해 숫염소를 잡아 그 피를 요셉의 채색 옷에 묻힌 후 집으로 돌아와 이 옷이 요셉의 옷이 아닌지 묻습니다.
야곱은 그 피 묻은 옷이 셉의 옷임을 금방 알아보고 형들을 안부를 알아보러 가던 길에 사나운 짐승에게 공격 당하여 죽음을 당한것이라고 생각하여 애통하며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가족들이 위로했지만 위로받기를 마다하면서 탄식하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듯이 요셉은 죽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훗날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계획 가운데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형들의 거짓말을 살펴보며 우리가 알아야 할 영적 원리들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요셉의 형들의 거짓말은 결국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시기와 미움으로 요셉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노예로 팔았습니다. 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팔아 넘기는 큰 죄를 은돈 20개를 받고 행한 것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선으로 이겨내지 못하여 살인과 같은 죄를 지은 것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의 죄성은 그 죄를 숨깁니다. 죄를 숨기기 위해서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동생 요셉을 팔아넘긴 것을 아버지 야곱에게 속이기 위해 숫염소를 죽이고, 요셉의 옷에 피를 묻히고, 그것을 가지고 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보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32절에 “우리가 이 옷을 주웠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교묘합니다. 아버지 야곱 스스로 요셉이 들짐승에게 잡혀 먹혀 죽었다고 믿게 유도한 것입니다.
큰 죄를 짓고도 하지 않은 척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만이 아니라 놀랍게도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던 다윗 왕도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아무일 없는 척 지냅니다.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 요압장군에게 우리아를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 죽이라고 전갈을 보내 죽게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 드리지 않습니까? 나단 선지자가 그 죄를 지적할 때까지 속이고 숨겼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죄를 무려 20년간 아버지 야곱을 속이고 숨기고 살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그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결국 그들이 행한 일들은 드러나게 됩니다.
분명 우리가 알아야 할 영적 진리는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죄는 거짓과 속임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국 그 죄는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 그 죄의 대한 대가를 치루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죄의 해결은 속임과 숨김이 아닌 회개인 것입니다. 죄를 숨기고 감출수록 영혼은 점점 어두워집니다. 하지만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빛 가운데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눈에 거슬리던 채색옷을 입은 요셉이 없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들짐승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들이 원하고 계획 했던 대로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본문 3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요셉을 보디발이라는 사람에게 팔았다. 그는 바로의 신하로서, 경호대장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이 말씀은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은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이집트로 보내셨다고 하십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삶은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준비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삶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선한 섭리입니다. 우리는 눈앞의 사건만 봅니다. 그것으로 지금 당한 일로 좋다, 안 좋다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의 전체 그림을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질 때도, 노예로 팔릴 때도, 이집트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의 집으로 갈 때도 하나님은 허락하시고, 일하고 계셨습니다. 요셉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감옥에 갇힐 때도 하나님은 허락하시고 계획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납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이런 어려움과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과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로마서 8:28절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야곱은 요셉의 형들이 가져 온 요셉의 피 묻은 옷만 보고 슬퍼하며 울며 탄식했습니다. 위로 받기 조차 거부했습니다. 야곱은 피 묻은 옷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죽음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곱과 같이 피 묻은 옷만 바라봅니다. 현재 당한 고통, 답답한 상황, 절망과 어려운 상황만을 봅니다.
우리는 야곱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이루실 새로운 시작을 보셨습니다. 참된 믿음은 피 묻은 옷 너머에 계신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의 거짓은 잠시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섭리가 승리했습니다. 사람의 악함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더 크고, 사람의 거짓보다 하나님의 진리가 더 강하며, 사람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섭리가 더 위대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간적인 분노와 미움의 감정으로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선하신 섭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어도, 믿음을 지켜 나가면 훗날 우리 역시 요셉처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나이다.” 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