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출애굽기 4:10-15

10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본래 말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입니다.”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이를 만들고 듣지 못하는 이를 만들며, 누가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거나 앞 못 보는 사람이 되게 하느냐? 바로 나 주가 아니더냐?
12 그러니 가거라. 네가 말하는 것을 내가 돕겠다. 네가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
13 모세가 머뭇거리며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씀드리니,
14 주님께서 모세에게 크게 노하시어 말씀하셨다. “레위 사람인 너의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나는 그가 말을 잘 하는 줄 안다. 그가 지금 너를 만나러 온다. 그가 너를 보면 참으로 기뻐할 것이다.
15 너는 그에게 말하여 주어라. 네가 할 말을 그에게 일러주어라. 네가 말을 할 때에나 그가 말을 할 때에, 내가 너희를 둘 다 돕겠다. 너희가 하여야 할 말을 가르쳐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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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께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듣지만 계속해서 거부하며 자신이 할 수 없는 변명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분명 인간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모세가 바로 왕에게 가서 노예로 일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모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 신분, 명분도 없었습니다. 강대국이요 강력한 힘을 가진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낼만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내가 누구이관대 감히 바로 왕에게 가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로 왕이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말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내가 이집트에 여러 가지 재앙을 내려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낼 것이다” 라고 분명하게 답을 해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의 손에 든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고 다시 잡으니 지팡이가 되는 기적, 그리고 나병에 걸린 손을 다시 치료하는 기적, 그리고 나일강이 피로 변하게 되는 기적을 보여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을 능력과 기적을 믿고 나아가도록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또다시 순종이 아닌 불순종의 대답을 합니다. 10절입니다.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본래 말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입니다”

모세는 과거 이집트의 왕자로 40년을 보냈습니다.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40년 광야에서 양을 치며 지내면서 자신감은 완전히 바닥난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자신의 약함을 더 크게 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을 때 우리는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우리의 부족한 조건과 환경을 먼저 바라봅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 순종하기 보다는 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불순종을 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나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 거듭되는 불평과 변명에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11-12절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이를 만들고 듣지 못하는 이를 만들며, 누가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거나 앞 못 보는 사람이 되게 하느냐? 바로 나 주가 아니더냐? 그러니 가거라. 네가 말하는 것을 내가 돕겠다. 네가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주이심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말하는 입을 만들었고, 내가 볼 수 있는 눈을 만든 자다. 내가 입을 만들었으니, 네가 말을 못 하면 내가 네 입에 말을 주겠다. 그런 변명하지 말아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모든 일들, 내가 할 수 없다로 생각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선포하심과 약속하심에도 불구하고 13절을 보면 모세는 머뭇거리며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나님께 대답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답, 약속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믿고 신뢰하기 보다 여전히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한 능력,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들의 문제가 아닙니까?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수없이 들음에도 불구하고 변하되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모세와 같이 자기 자신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믿음으로 순종할 것을 원하시며 행할 수 있는 수많은 믿음의 말씀으로 격려하고 도전하는데 그 말씀에 모세와 같이 결국 “나는 못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하십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 표현대로 한다면 그만큼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고 격려하고 이끌어 주겠다고 하는데도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우리 같으면 뒤통수라고 한 대치면서 “그만 둬라. 내 입만 아프다” 라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노하셨지만 그 노함은 모세를 버리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불신앙을 안타까워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시면서도 대안을 주십니다. 바로 말 잘하는 형 아론을 동역자로 붙여주신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크게 노하시어 말씀하셨다. “레위 사람인 너의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나는 그가 말을 잘 하는 줄 안다. 그가 지금 너를 만나러 온다. 그가 너를 보면 참으로 기뻐할 것이다”하나님은 화를 내시면서도 대안을 주십니다. 바로 말 잘하는 형 아론을 동역자로 붙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사명 자리에 두지 않으시고, 동역자를 예비하십니다. 신앙생활과 사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부족하면 하나님은 내 옆에 채워줄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내 능력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아니라, 주님께서 “가라” 하실 때 “하라, 하지말라” 라고 명령하실 때 순종하며 나아가는 태도입니다.

15절입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여 주어라. 네가 할 말을 그에게 일러주어라. 네가 말을 할 때에나 그가 말을 할 때에, 내가 너희를 둘 다 돕겠다. 너희가 하여야 할 말을 가르쳐 주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의 형 아론을 붙여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의미는 아론이 더 능력 있고, 더 잘 인도할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두 사람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말을 알려 주시고, 행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시고, 감당할 힘과 능력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사명의 완성은 우리의 뛰어남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의 둔한 혀도 역사를 일으키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의 승리는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로 향합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마른 지팡이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의 입은 여전히 둔했으나, 하나님이 그의 입이 되어 주셨고 아론이 함께 걸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나의 연약함 뒤에 숨지 마십시오. 내 입이 뻣뻣하다고, 내 은사가 부족하다고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입을 지으셨고, 동역자를 예비하셨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 그 하나님의 부름에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하며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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