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8:8-13

8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볼 것도 없고, 먹는다고 해서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
9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11 그러면 그 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약한 신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12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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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 안에서 그 당시 우상에게 제사로 드려졌다가 시장으로 나와 팔리는 고기를 사서 먹는 성도들과 먹지 않는 성도들간에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성도들과 먹어도 상관없다는 것으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됨이 나뉘어지고 다툼이 생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서로 옳다고 생각하는 갈등의 문제들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교회와 가정과 관계 속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할 때 끝까지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내가 옳다고 싸웁니다. 내가 하는 행동을 바꾸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그러했습니다.

본문 8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러할 때 원하시는 참된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 바울은 바른 지식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려 줍니다. 우리가 어제 나누었던 4절을 통해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우상 음식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8절에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고, 먹는다고 해서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지식, 즉 우상에 드려진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지식을 가진 성도로서 그 지식을 가지지 않은 성도들, 즉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약한 성도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첫째,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하는 지식이 없는 성도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틀렸다고 비난하고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 라고 주장하는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배려하고, 이해하고,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내가 가진 지식이 있다고 마음대로 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 자유란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사서 먹는 것 죄가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사서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걸림돌이 될 수 있는지를 10-11절에 설명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 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약한 신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성도로서 우상에 바쳐졌던 고기를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성도가 먹는 것에 자유함을 알고 그렇게 먹는 것을 보고 “그래도 되는가 보다” 라고 믿음이 아닌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의심하는 가운데 먹는다면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사람이 저래도 되는가?” 라는 일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말과 행동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일입니다. 예를 든다면 술 담배 먹는 것이 죄냐 아니냐라는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술에 취해서 해서는 안될 추태를 부리지 않는다면 죄가 아니라는 지식이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술 담배는 아니지 라는 양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할 때 그들 앞에서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그 모습으로 인해 그 사람의 신앙과 믿음에 걸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투나 행동에 대해 자신은 “그게 뭐 어때”라고 자유할 수 있지만 나의 그러한 말투와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 믿음에, 신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 인해 우리에게 자유의 영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하는 자유의 모습으로 인해 누군가의 신앙과 믿음에서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죄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12절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상제물인 고기 먹는 일에 대하여 먹어도 되는 자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13절에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의 자유함으로 행하는 일로 인해 누군가에게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걸림이 된다면 평생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깨달아 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성도님들이 “내가 뭘 잘못했냐? 내가 못할 말 했냐? 못할 행동을 했냐?”라며 억울해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나의 지식, 옳고 그름, 내 권리, 내 자유가 있냐 없냐? 를 넘어서야 합니다. 나의 자유, 나의 권리, 나의 옳고 그름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닌 나의 자유, 나의 권리, 나의 옳음이 누군가에게 신앙의 걸림돌이 된다면 사도 바울처럼 “내가 그것을 하지 않겠습니다. 고치겠습니다. 바꾸겠습니다” 라는 마음이 참된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이유,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를 고린도전서 10:31절에 이렇게 알려줍니다.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나의 자유를 넘는, 내가 가진 지식과 판단을 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러한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위해 기도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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