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스더 6:1-13

1 그 날 밤, 왕은 잠이 오지 않아서 자기의 통치를 기록한 궁중실록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 자기 앞에서 소리를 내어 읽게 하였다.
2 실록에는, 대궐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죽이려고 한 음모를, 모르드개가 알고서 고발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3 왕이 물었다. “이런 일을 한 모르드개에게 나라에서는 어떻게 대우하였으며, 어떤 상을 내렸느냐?” 그 곳에 있던 시종들이 대답하였다. “나라에서는 그에게 아무런 상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4 왕이 다시 물었다. “궁궐 뜰에 누가 있느냐?” 마침 그 때에 하만이 왕에게 자기 집에 세운 장대에 모르드개를 달아 죽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으려고, 궁전 바깥 뜰에 와 있었다.
5 시종들은 하만이 뜰에 대령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왕이 명령하였다. “들라고 일러라.”
6 하만이 안으로 들어오니, 왕이 그에게 물었다. “내가 특별히 대우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하여 보시오.” 하만은 왕이 특별히 대우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기 말고 또 누가 있으랴 싶어서,
7 왕에게 이렇게 건의하였다. “임금님께서 높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시면,
8 먼저 임금님께서 입으시는 옷과 임금님께서 타시는 말을 내어 오게 하시고, 그 말의 머리를 관으로 꾸미게 하신 뒤에,
9 그 옷과 말을 왕의 대신 가운데 가장 높은 이의 손에 맡기셔서, 임금님께서 높이시려는 그 사람에게 그 옷을 입히시고, 그 사람을 말에 태워서, 성 안 거리로 지나가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을 모는 신하에게는 ‘임금님께서는, 높이고 싶어하시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대우하신다!’ 하고 외치게 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10 왕이 하만에게 명령하였다. “곧 그대로 하시오. 대궐 문에서 근무하는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내 옷과 말을 가지고 가서, 경이 말한 대로 하여 주시오. 경이 말한 것들 가운데서,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그대로 하도록 하시오.”
11 하만이 왕의 옷과 말을 가지고 가서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또 그를 말에 태워 성 안 거리로 데리고 나가서 “임금님께서는, 높이고 싶어하시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대우하신다!” 하며 외치고 다녔다.
12 그런 다음에, 모르드개는 대궐 문으로 돌아왔고, 하만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달아나듯이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13 하만은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자기가 방금 겪은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하였다. 그의 슬기로운 친구들과 아내 세레스가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유다 사람 모르드개 앞에서 무릎을 꿇었으니, 이제 그에게 맞설 수 없소. 당신은 틀림없이 망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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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은 페르시아 제국의 사람이 아닌 소수민족이었던 아말렉 민족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만은 페르시아 제국의 왕인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받아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엄청난 부를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감사와 만족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궁궐 문에서 일하는 하챦은 모르드개 라는 사람이 상관인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하만은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는 모르드개에 대한 분노를 모르드개 한 사람이 아닌 그의 민족인 온 이스라엘 민족을 도륙하려고 왕의 허가를 받았고 모르드개를 참지 못하고 높은 장대에 달아 죽이려고 계획했지만 도리어 자신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함께 하만이라는 사람의 특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은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하만은 첫째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만은 아각 즉 아말렉이라는 민족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말렉도 이스라엘과 같이 페르시아에 정복당한 소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만은 포로 된 소수 민족 사람이었지만 능력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대 말로 표현한다면 자기 능력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위험한 태도가 바로 교만함입니다. “내 능력으로 내 힘으로 이만큼 이루었다. 내 능력으로 바닥에서 내가 이만큼 높은 자리까지 올라 왔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기에 나 자신만을 믿고 내가 원하는 일, 내 뜻대로 모든 것을 하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내 뜻대로 내 원함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것이 교만한 사람의 마음 자세입니다. 그런 교만한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나를 나타내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왕이 하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을 특별히 대우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습니다. 6:6 “하만이 안으로 들어오니 왕이 그에게 물었다. 내가 특별히 대우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하여 보시오” 그러자 하만은 왕이 특별히 대우하고 싶은 사람이 자기라고 착각하고 왕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8-9절 “임금님께서 높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시면 먼저 임금님께서 입으시는 옷과 임금님께서 타시는 말을 내어 오게 하시고 그 말의 머리를 관으로 꾸미게 하신 뒤에 그 옷과 말을 왕의 대신 가운데 가장 높은 이의 손에 맡기셔서 임금님께서 높이시려는 사람에게 입히시고 그 사람을 말에 태워서 성안 거리로 지나가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은 모는 신하에게 임금님께서는 높이고 싶어 하시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대우하신다” 하고 외치게 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하만이 하는 말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높이 우러러 보고 알아주기 원하는 속마음을 그대로 들어 낸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성공했다는 것을 어떤 모습으로든지 보여 주고 싶은 속마음이 있습니다. 비싼 차를 사는 속마음, 비싼 명품 옷이나 가방, 신발 등을 사서 입는 속마음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 원하고 “내가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 대부분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은 외형에 치우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온 신경을 씁니다.

교만한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쉽게 분노하는 사람입니다. 쉽게 화를 내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조금 안 좋은 소리를 했다고 분노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분노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합니다. 분노를 쉽게 하는 사람이 바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누가 나를 험담하는 소리를 들어도 그렇게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지’ 라고 너그럽게 받아 들입니다. 내 의견을 양보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넓게 받아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보통 때는 웃는 모습을 하고, 겸손한 것 같고, 부드러운 것 같지만 누군가 내 자존심을 조금 건드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참지 못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면 쉽게 화를 내고 분노하는 사람들은 100%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인사하지 않았다고 분노했습니다. “나를 어떻게 보고, 내가 어떠한 사람인데 네가 인사하지 않느냐”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분노한 것 아닙니까? 교만하기 때문에 분노한 것입니다. 주변에도 보면 별것 아닌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라고 분노하는데 무슨 일인가 들어보면 별것 아닙니다. 나에게 인사하지 않는 일이 그렇게 분노할 일입니까? 그 사람을 죽일 일입니까?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연관된 400만 명을 그 한 사람 때문에 죽일 일입니까?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죽이려고 했던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 내 힘을 보여 주겠다는 교만함이 그 마음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만한 사람이었기에 분노하고 그 분노를 살인하려는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내 마음에 어떤 사람 때문에, 어떤 일로 분노함이 있습니까?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누가 이야기 할 때, 내 원함과 다른 모습이 보았을 때 분노함이 생기십니까?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와 작은 잘못에도 대해 참지 못하고 분노하는 모습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 쉽게 분노가 생깁니까? 그렇다면 “내가 교만한 사람이구나” 라고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교만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의 교만함을 깨트려 주소서” 깊이 회개하는 기도가 있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 하만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만이 궁전 문을 드나들면서 어떤 신하가 말해준대로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 살펴보았습니다. 3:5 “하만은 모르드개가 정말로 자기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고 자기에게 절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화가 잔뜩 치밀어 올랐다”상관인 자신이 지나가는데 절하지 않고 인사하지 않는 모르드개에게 화가 나는 것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한국 사극을 보면 궁궐에서 직위에 따른 상하계급과 얼마나 깍득하게 인사를 합니까? 궁전 문지기 주제에 총리가 지나가는데 고집을 부리며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보았을 때 하만이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분노하는 마음, 화가 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고,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내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화가 나고 분노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성경에서, 또한 하나님께서는 화가 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화가 났을 때 그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그 화는 분노가 되고 그 분노는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과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분노와 화를 컨트롤 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교회 전체가 힘듭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남편, 아내가 있으면 그 가정이 힘듭니다. 문제는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분노함을 다스리지 못함으로 자신이 무너지고 나로 인해 가정과 내가 속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문제와 상처를 주었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 또한 문제입니다.

하만은 끓어 오르는 분노와 화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상관인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고 인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화가 났고 분노가 생겼다면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모르드개를 직접 불러와 잘못을 깨우치게 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고집을 피우면 나라의 법으로 모르드개를 징계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분노를 모르드개를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죽이려는 악한 계획을 했습니다. 3:6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만을 죽이는 것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였다 하만은 아하수에로가 다스리는 온 나라에서 모르드개와 같은 겨레인 유다 사람들을 모두 없앨 방법을 찾았다”“모르드개가 속한 사람들 모두를 다 죽여 버려야겠다”라고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사단에게 이용당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관계가 깨어지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깨트리는 악한 일에 사용당합니다. 우리도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하만과 같이 미움과 살인의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만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험담과 뇌물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다 죽이는 왕의 인장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런 행동까지는 행하지 않더라도 분노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하만과 동일한 죄를 짓는 것이다 라고 하나님을 말씀하십니다.

요한1서 3:15 “자기 형제 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입니다”마태복음 5:21-22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화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살인죄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받게 된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에베소서 4: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화가 날 때 죄를 짓는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라고 명하십니다. 화를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화를 다스릴 수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오늘 함께 나눌 말씀입니다.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첫째, 분을 억제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합니다. “나는 성격상 마음에 담아 두지 못합니다. 화를 참는 것은 저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목사님은 저를 몰라서 그래요. 저는 화가 나면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그때는 제가 아닙니다. 화를 내는 것은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 화가 나는 정점까지 가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입니다.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참지 않는 것입니다. 화를 내고 안내는 것은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습니다. 잠언 29:11 “미련한 사람은 화를 있든 대로 다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화가 나도 참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화를 억제하는 사람입니다. 화를 있는 대로 내는 것과 화를 억제하는 것이 바로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차이입니다. 분은 억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분을 낼 것이냐 참을 것이냐는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분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라 분을 내기로 내가 선택한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살인의 원인은 분노였습니다. 창세기 4:5-7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죄를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은 네 마음에 끓고 있는 분노를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는 명령은 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에도 가인은 분노를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분노를 다스리지 않고 마음에 계속 화를 품고 있었기에 결국 동생을 살인하는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4: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대부분 이 말씀을 들으면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말라고 하니까 “낮에까지는, 하루 동안은 분을 품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낮에는 화내도 되는 것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합니다.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루 동안 화를 내도 괜찮다는 말뜻이 아니라 화가 날 때 빨리 분을 억제해서 죄에 이르는 말이나 생각,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분이 화가 난다고 당장 하고픈 말을 하면 안됩니다.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그 순간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하십시오. 분을 억제하고 그 순간 내가 해야 할 말, 태도가 무엇인지 기도함으로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결심해야 합니다.

두 번째,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분냄의 댓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분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분냄의 댓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하만은 분을 억제 하지 않고 키움으로 미움으로 살인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그 악한 계획은 결국 자신의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분이 났을 때 바로 해결했다면 결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를 다스리지 않았기에 받은 결과에 대해서 많은 예들이 있습니다. 모세가 화를 다스리지 않고 바위를 두 번이나 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위해서 물을 또 주어야겠느냐?”라고 한 결과로 그렇게 원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또한 화를 억제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은 자신의 우둔함과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과 인정을 잃는 것입니다. 잠언 14:29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 사람은 매우 명철한 사람이지만 성미가 급한 사람은 어리석음만을 드러낸다” 잠언 15:18 “화를 쉽게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성을 더디 내는 사람은 싸움을 그치게 한다”잠언 29:22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기를 잘하는 사람은 죄를 많이 짓는다” 이 구절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분을 낼 때마다 우리는 패배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분을 낼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잃는 것입니다. 분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내는 사람은 그 사람으로 인해 모임이 깨집니다. 문제를 더 크게 만듭니다. 가정에서는 가족들에게, 교회에서는 성도들에게, 회사에서는 사원들에게 신뢰를 잃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분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로 세워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직분자로서 분을 조절하지 못하고 소리를 치고, 감정대로 말하고, 눈을 부라리고, 자리를 뜨는 것 당사자는 자신이 옳다고 하지만 아닙니다. 화를 냄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어려워지고 가정과 관계에 신뢰가 깨어지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나는 잊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다 기억합니다.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내가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드러낼 때 나 자신은 독약을 먹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독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화를 내는 것에는 분명한 댓가가 있습니다.

세 번째,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욱하는 성격, 화를 내는 성격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안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에 화가 있습니까? 그 분노를 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가능케 하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분노가 치솟아 오를 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내 마음에 평강을 주십시오” 우리의 힘으로 화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가능하십니다.

골로새서 3: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분노가 지배하는 것을 끊으시고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시도록 부르셨습니다. 아멘.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내어 드리면 우리의 마음에 화를 물러가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가득찰 것입니다.

어떤 신앙인이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나의 마음을 주님 보십시오.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고 의지합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시옵소서.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시옵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시고 주의 성령으로 내 마음을 채우사 주의 길을 가게 하시옵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시옵소서” 다윗도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옵소서”

당신의 마음에 분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힘과 마음의 평강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더 나아가 내게 새로운 마음, 주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내가 받은 상처와 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쏟지 않도록 새로운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새로운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할 때 남은 평생의 시간을 분노를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분노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헤이워드 성도님 한분 한분들이 매 순간 마다 찾아오는 분노의 문제를 이기고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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