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13:4-7

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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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신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지를 간단명료하게 정의해 주신 말씀입니다. 사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은 1장부터 12장까지에 다루었던 고린도 교회 안에 만연해 있는 분열과 다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 즉 하나됨과 성숙됨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한 장이나 한두구절만 읽고 묵상하면 그 말씀속에 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의미를 놓치기가 쉽습니다. 고린도전서 전체를 읽지 않고 13장에 쓰여진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합니다. 시기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 라는 말씀을 읽는다면 “좋은 말씀이구나. 사랑이란 그런거지” 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하는 정도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12장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던 분쟁의 문제, 성찬의 문제, 소송의 문제, 우상제물을 먹는 문제, 예배의 질서의 문제, 은사의 문제들이 일어난 원인들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교만함과 시기, 비난과 정죄함이 있는 상황을 안다면 왜 하나님께서 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시고 있는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 안에 있었던 문제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 우리들 안에는 없습니까? 있습니다. 죄성을 가진 사람 사는 곳은 언제, 어디나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교회 안에도, 성도들 가운데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과 은혜,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됨을 위한, 화해와 화목함을 위함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된 우리가 추구하고 힘써야 할 하나님의 뜻과 명령은 바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됨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가장 좋은 길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절인 31절에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시며 13장으로 들어가 하나됨을 위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랑은 이런 모습이다라고 사랑의 정의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후에 14:1절을 보면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 개역성경에는 “사랑을 따라 신령한 것을 구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를 13:1-3절에 우리가 어떠한 섬김, 지식, 은사, 능력과 희생을 한다고 해도 사랑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귀를 아프게 하는 울리는 징과 꽹과리 소리처럼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교회에도 하나됨과 세움에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도 인정받지 못하고 상을 받지 못함을 알려 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랑에 관한 정의인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라는 말씀은 자신들이 의롭다고, 옳다고, 자신들이 가진 생각과 판단, 은사가 다른 사람들 보다 높고 우월하다고 판단하고, 다투고 싸우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성도들을 대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인데 그러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한다면 교회 안에, 성도들간에 다툼이나 나뉨, 편이나 싸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말씀하시는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고,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무례히 행치 않고, 사랑은 성을 내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고 모든 것을 덮어주고, 믿어주고 견디는 사랑은 우리안에 있는 사랑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 주신 그 십자가의 사랑, 우리가 죄인이요 원수되었을 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알려 주십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우리들,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내것을 먼저 챙기고, 내가 옳다고 비난하고 자랑하고 다투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이러한 사랑이다. 너희가 받은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이 아니냐?” 라고 하시는 마음이 담긴 말씀이 본문에 나오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온유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덮고 견디는 것이다” 라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장 좋은 길, 모든 다툼과 시기, 싸움과 나뉨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사랑입니다. 내가 추구하고 있는 모든 것이 사랑의 동기가 된다면 우리가 있는 곳에는 하나됨과 화목과 놀라운 구원, 회복과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참는 것, 온유한 것, 시기하지 않는 것,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는 것, 무례히 행치 않는 것,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 성내지 않는 것,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보며 견디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세상은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 우리가 받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항상 조건이 붙습니다. 꼭 “네가 이렇게 내 뜻대로 하면. 내 마음에 들게 하면” 이라는 조건이 붙는 사랑을 합니다. ‘네가 먼저 나를 기분좋게 하면, 네가 먼저 공부를 잘하면, 내 말을 잘 들으면, 내가 먼저 내가 원하는대로 머리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면”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가페라는 사랑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에게 사랑받을 만한 것이 없었을 때에도 오래 참으시고, 품어주시고, 용서의 길을 먼저 열어주신 그 사랑을 깨달아 우리의 삶이 사랑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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