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상 18:16-24

16 오바댜가 아합에게로 가서, 이 사실을 알리니,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왔다.
17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요?”
18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과 임금님 아버지의 가문이 괴롭히는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주님의 계명을 내버리고, 바알을 섬기십니다.
19 이제 사람을 보내어, 온 이스라엘을 갈멜 산으로 모아 주십시오. 그리고 이세벨에게 녹을 얻어 먹는 바알 예언자 사백쉰 명과 아세라 예언자 사백 명도 함께 불러 주십시오.”
20 아합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고, 예언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았다.
21 그러자 엘리야가 그 모든 백성 앞에 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들은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22 그래서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쉰 명이나 됩니다.
23 이제, 소 두 마리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십시오. 바알 예언자들이 소 한 마리를 선택하여 각을 떠서, 나뭇단 위에 올려 놓되, 불을 지피지는 않게 하십시오. 나도 나머지 한 마리의 소를 잡아서, 나뭇단 위에 올려 놓고, 불은 지피지 않겠습니다.
24 그런 다음에, 바알의 예언자들은 바알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그 때에, 불을 보내셔서 응답하는 신이 있으면,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

오늘 본문의 사건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건입니다. 갈멜산 위에서 엘리야와 바알와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신이 참된 신임을 증명하는 목숨을 건 결투였습니다. 갈멜산 사건 속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아합 왕, 이스라엘 백성들, 엘리야입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수천년전에 있었던 사람들이지만 그 유형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살펴보면 나의 신앙의 상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아합이라는 인물입니다. 아합 왕이 엘리야를 보자마자 17절에“그대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요?”라고 말합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는 원인이 엘리야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을 배도한 아합 본인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나라를 우상의 나라로 만든 아합 본인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우리가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잘못과 나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모든 문제를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찾습니다. 내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가 다 다른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두 상대방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합과 같이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릅니다. 문제의 중심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갈멜산에서 불을 내리는 싸움을 한다는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백성들을 향해 엘리야는 이렇게 외칩니다. 21절입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들은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은 아합 왕이 바알을 섬기고 있고 그의 아내 이세벨은 하나님을 섬겼던 선지자들을 죽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니 눈치 보이고 핍박을 당할 것 같습니다. 또 보니 바알 신을 섬기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죄에 대해 관대합니다. 제약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과 상황에 따라 하나님도 대충 섬기는 척 하고 바알은 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바로 엘리야입니다. 22절 이하를 보십시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나만 홀로 남았다.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좁은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길, 그러나 생명의 길로 가는 소수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참된 신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믿고 끝까지 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오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었기에 엘리야는 홀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을 태우는 신이 참된 신임을 증명하는 목숨을 건 대결을 제안한 것입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바알 신을 비와 바람과 천둥과 번개를 주관하는 신이기 믿고 있기 때문에 제단에 번개를 내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야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서 분명하게 불을 내리는 신이 참된 신이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찬성을 합니다.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상황을 이기는 것입니다. 편함을 이기는 것입니다. 아니 희생과 고난을 받지만 하나님만 섬기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두려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이 땅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따르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상황을 보고 하나님을 뒷전으로 하고 바알을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우리에게도 이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어떤 일만 생기면 시험에 들었다, 상처받았다고 하면서 신앙을 저버리거나 편안하고 안일한 신앙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되기 원합니다. 담대하게 하나님을 선택하는 엘리야의 신앙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시간 기도할 때 아합과 같이 다른 사람들 탓하는 모습을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타협과 양다리 신앙을 버리고 엘리야와 같이 담대하게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기고 따르겠다는 결단으로 살아가는 신앙이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Follo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