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9:10-12

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12 그는 환상 속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어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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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울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로 변화시키기 위해 준비한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바로 아나니아라는 제자였습니다. 10절을 보면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개역 성경에는 ‘그런데’ 라는 말을 ‘그때에’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10절의 ‘그때에, 그런데’ 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울에게 하나님의 빛과 음성을 보여 주심으로 앞을 보지 못하고 삼일을 금식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위해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언제 예수님을 믿고, 언제부터 다메섹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2:12절에 “그는 율법을 따라 사는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에 사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니나아는 그의 이름에 맞게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 안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아나니아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합당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10절에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니니아를 부르시자 바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경험했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욕심에서 오는 생각, 자신의 감정에서 오는 생각, 더 나아가 사단이 주는 생각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무시하고 거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나니아는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나니아야’ 라고 부르시니까 바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즉 “제가 언제든 주님의 뜻대로 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나니아와 같은 마음의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 목숨까지 주시며 구원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겠다고 결단하고 헌신을 고백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 하지 말라고 하신 명령들을 우리가 순종하겠다고 대답하고 행하면 사실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은혜, 도움과 역사하심을 보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다가 또한 설교 말씀을 듣다가, 기도하다가 성령님의 감동시키시어 깨닫게 하시고 행할 일을 알려 주실 때, 나를 부르실 때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순종하는 이 시대의 아나니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나니아가 “제가 여기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십니다. 11-12절입니다.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그는 환상 속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어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보았다” 다메섹에 와 있는 사울을 찾아 가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유다라는 사람의 집을 찾아서 그 집에 기도하고 있는 다소사람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사울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토요새벽 설교에서 전했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결국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사울은 바리새인으로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해 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울의 기도는 이전과 다른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냥 시간을 따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도록 형식적으로 기도를 했다면 지금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참된 주님을 만났고 알기에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 예수님이 메시야가 되신다는 것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하심을 구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일과 행동, 삶을 살았음을 깨닫고 회개하며 자신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묻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가 참된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내 욕심과 원함을 채워 달라는 기도만을 넘어, 나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 받기 위한 기도만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뜻대로 행하고자 하나님의 대답과 명령을 기다리는 기도가 참된 기도인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 손을 얹고 기도함으로 다시 보게 하고 세움을 받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하신 명령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신 명령이 아니겠습니까? 사울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가 그의 영적인 눈이 열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세우는 일이 우리를 먼저 택하시고 준비하신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사울이 아니니아를 만나게 되어 기도를 받고, 눈을 뜨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사명을 받아 놀랍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이 이 시대의 아나니아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시대의 아나니아로 가득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나니아와 같이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주님 네가 여기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명령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아나니아의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귀한 일을 감당할 준비를 하고, 맡기시는 일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자임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성도들과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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